눈은 나를 좀 닮지 않았니?
등산로가 나왔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오가서 풀이 자라지 않게 된 누런 흙길이 구불구불 길게 뻗어있다. 더는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울상을 지으며 출근을 걱정하던 꿀벌이 언제 그랬냐는 듯 명랑한 목소리로 먼저 가겠다는 인사를 하고 뛰어 내려간다. 꿀벌의 뒷모습이 빠르게 멀어져 사라진다. 이제 굳이 앞장설 필요가 없게 된 나희는 걸음 속도를 늦춘다. 오늘은 대여 침낭 세트가 세 개다. 여섯 개씩 들고도 뛰어다녔던 나희에게 짐이 무거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빨리 걷기가 힘들다. 자연스럽게 제스, 김영우, 나희 순서대로 한 줄이 된다.
나희는 김영우의 뒤통수, 살 오른 목과 어깨, 둥그스름한 몸집을 유심히 본다. 태어나 한 번도 제 사지의 근육을 의식적으로 통제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넋 놓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저 어린 청년이 나희의 예전 이름을 불렀다. 이모, 라고 불렀다. 몇 분 전 가까이서 보았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다시 그려본다. 잊은 적 없지만 기억하는 방식을 바꾼, 가희였던 과거를 헤집어 본다.
등산 코스 초입이 가까워진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김영우가 마주 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며 몸을 옆으로 틀다가 고개를 더 돌려 뒤에 있는 나희를 본다. 나희가 잠깐 걸음을 멈춘다. 하얗고 통통한 그 얼굴에서 눈이 딱, 나희가 아는 어떤 얼굴과 겹친다. 끝이 날렵하게 올라가서 웃는 듯 매서워 보이는 눈이 그 눈이다. 맞다. “첫애는 아빠 닮는다던데, 그래서 영우가 언니를 하나도 안 닮았나 봐. 형부만 닮았나 봐.” 가희였던 시절 그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를 형부라고 척척 이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영우의 외모에 관한 말이 나오면 미산은 힘없이 웃으며, “눈은 나를 좀 닮지 않았니?” 해놓고 얼른 화제를 돌리곤 했다. 큰아들이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말이 칭찬은 아니었다. 미산은 가무잡잡하고 윤기 흐르는 피부에 몸매가 탄탄한 미인이었다. 나희가 김영우를 보고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건 어린애가 어른이 되어서 나타난 까닭도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엄마와 전혀 닮지 않은 탓이 더 컸다. 기억해 낸 나희의 걸음은 더 느려진다.
노숙 팀이 하산하는 이른 시간엔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좁은 산길에서 마주치면 아침의 활기로 인사를 건네는 등산객도 늘 있다. 오늘도 산 입구까지 내려가면서 네 명이나 안녕하세요, 물어왔지만 제스, 김영우, 나희, 누구도 한 번도 답을 하지 않았다. 어제 모였던 장소에 이를 때까지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세 사람이나 사라져 버려서 나희가 걱정을 하는 거라고 여긴 제스는 싸지타와 연락이 되는 대로 알리겠다고 다시 말하며 나희를 안심시키려 한다. 인사를 하고 역 안으로 내려간다.
나희와 김영우가 곰탕집에서 마주 앉아 국밥을 먹는다.
“회사 다닌다며. 안 늦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