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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단편2

by 김연주

묵직한 대문을 밀어 내자, 넓은 마당의 흙먼지 냄새가 훅 하고 풍겨온다.

평생 어머니와 이 집을 지키며 살던 5살 위의 누님이 죽고, 이제 내 집이 된 고택(故宅)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시절 내 귓가를 채우던 때 이른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워낙 부지런하고 깔끔한 누님의 성격 탓인지 엉덩이를 붙인 툇마루의 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나무 틈 사이 먼지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집안 어디를 들춰봐도 흉볼 곳이 없으리라. 잠시 넋을 놓고 있다 문뜩 정신이 들어 안채를 지나 사랑채에 있던 어릴 때 쓰던 방문도 열어보고 담장 밑에 자리한 장독대 뚜껑도 들어 올려본다.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누님 덕에 초여름 문턱에 있는 지금 시선이 닿는 곳마다 꽃들이 만발하고, 그 꽃들 주위로 날아든 나비와 벌떼들 때문에 마치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렇게 한참을 꿈속 같은 몽실몽실한 기분에 사로잡혀 천천히 뒷마당까지 걷다가 내 두 눈앞으로 우물이 보이자마자 검붉고 뭉툭한 불쾌감이 순식간에 나를 현실세계의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친다. 애써 못 본 척 급히 발길을 돌려 다시 안채로 돌아와 참았던 숨을 몰아 쉬니, 6월의 뜨뜻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 나를 에워싸고 이마 위로는 식은땀이 줄줄이 맺혔다.


나는 저 우물이 싫다, 무섭다.

그날 밤, 몸은 고단한데 도통 잠이 들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앞으로 이 집을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쓸데없이 큰 옛 한옥집, 이런 집이 쉽게 팔리지는 않을 테고, 내가 들어와 사는 것도 마땅치 않다. 서울과도 너무 멀고 무엇보다 이 큰집을 관리하려면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겠니와 사람을 쓰자니 돈도 상당히 들어갈 것인데, 어떤 이유로 그런 수고와 투자를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저 우물이 있는 한 나는 절대 이 집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저 우물을 모두 메꾸고, 시멘을 발라 흔적을 말끔히 지운다 하더라도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 스타일의 숙박업 소나, 커피가게가 인기라고 하니 그쪽으로 눈을 돌려 살만한 사람들을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많은 생각들을 하다 언제쯤 잠이 들었을까?

어느샌가 나는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원치 않는 꿈속의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시끄러운 여름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선명히 들려오고, 어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내던 아버지의 큰 얼굴이 보인다.

“귀한 내 새끼”

아버지는 나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

아버지는 본인과 나에게만 관대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딸도 그에게는 집에서 부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세상의 중심은 오롯이 자신뿐이라 생각하는 안하무인에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여서 집안사람 모두가 마주치길 두려워했다.

내 어린눈에 비친 아버지는 철로 만든 불 뿜는 호랑이었다. 그 시대에는 드문 큰 키와 체격도 그랬거니와, 용이 불을 뿜어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성량의 목소리와 뒤룩거리던 큰 눈은, 지금 생각해도 나를 위축시킬 정도로 강해 보이다 못해, 마치 죽음도 피해 갈 것처럼 보이던 강철 호랑이.


그랬던 아버지가 이른 치매로 조금씩 정신을 놓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이었다.

증상은 점점 심해져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봄, 어머니는 사람들을 시켜 아버지의 사지를 묶어놓고 방에 가둬두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거나 높은 담이나 문간에 머리를 찧어 피를 본적도 허다하니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사지를 묶어 아버지를 보호해야 할 것 같다며 표정 없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짐승처럼 줄에 묶여 밤이고 낮이고 울부짖던 아버지는 그해 여름의 어느 날 밤, 우물에 빠져 죽었다.


이른 아침 큰 소란에 졸린 두 눈을 비비고 우물가로 다가가니, 우물 속에서 이제 막 끌어올려진 죽은 아버지가 보였다.

그때 시체로 발견된 아버지의 모습보다 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풀어진 윗저고리만 입은 채 벌거벗은 아버지의 아랫도리 모습이었다.

순간, 돌처럼 굳어버린 채 숨 쉬는 것도 잊었던 나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이런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들어가 공부나 하라며 뒤돌아 섰던 어머니.

공부라니... 죽은 아비의 모습을 본 아들에게 어미라는 사람이 던진 첫마디가 공부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미웠던 것이겠지? 자신과 딸을 노비 취급하며 기분에 따라 손을 올리던 사람이 좋았을 리 없었겠지... 하지만... 그래도...

밧줄이 풀린 건지, 풀은 건지, 자유를 얻자마자 방문을 열고 이리저리 날뛰다 우물에 빠진 것 같다는 어른들의 수군거림.

왜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날뛰기만 했을까?

왜 하필 자기 방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우물로 달려가 커다란 나무덮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을까?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품들을 모두 팔거나 태워버렸으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도 대부분 내보냈다.


1년이 지나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하숙집으로 떠날 때쯤, 이 큰집에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이혼을 시키고 되찾아온 누님, 그리고 노비문서가 사라진 한참 뒤였음에도 스스로를 노비로 여기며 살던 노부부만이 남아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고향집을 한동안 내려가지 않았다.

낯선 서울살이의 적응과 학업을 핑계로 삼고 있었지만, 그 우물 옆에 놓여있던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 그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렵고 싫었던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리신 건지, 아니면 무관심이신 건지 어머니도 딱히 이런 내 행동에 섭섭함을 드러내신 적도, 성인이 된 아들에 대한 어떤 질문도 없으셨다.


하지만 누님은 대학시절 동안 두어 번 서울로 올라와 내가 지내고 있는 곳을 살펴보고, 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만나는 아가씨가 있는지 없는지도 궁금해했으며, 운 좋게 미국물을 먹을 기회가 있어 타국에서 지낼 때도 안부를 묻는 편지들을 여러 번 붙여주었다.


그렇게 몇 년 후 미국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실로 오랜만에 고향집에 들어선 나를 버선발로 반기던 누님의 뒤로, 여전히 무표정하게 내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첫마디는 “너는 네 아비랑 점점 똑같아지는구나”였다.


그 이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정오가 흘쩍 넘어서야 눈이 떠졌다.

간밤에 꿈이 흉했는지 몸이 무겁고 졸음이 쉬이 물러나지 않는다. 한참을 미적거리다 대충 요기를 때우고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벌써 시간은 네시가 다되었고 비가 오려는지 마당 위로 보이는 하늘 가득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깜빡 잊고 챙겨 오지 못한 혈압약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하루 더 머물기로 하고 누님이 지내던 방으로 들어가 본다.

따로 처리할 것도 없는 간소한 개인물품들. 계절별 옷가지 몇 벌과 앉은뱅이 화장대 위로 주인 잃은 로션병 하나와 서랍 안에 있는 낡은 지갑과 빗, 둥근 모양의 손거울이 전부였고, 머리맡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그나마 사람이 지내는 방 같은 인상을 줄 뿐 누님은 그 흔한 은 가락지 하나 없었다.

누님은 누가 봐도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죄라도 된 양 평생을 숨기며 살았다. 좋아하는 것이라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꽃을 키우는 것뿐이었던 욕심 없는 사람이었기에 끝끝내 항암치료를 거부하며 이 정도 살았으니 됐다 라며 웃는 얼굴로 떠날 수 있었던 걸까?

누님이 죽기 하루 전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이제 어머니를 용서하라는 말을 했다.

누님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우물에 빠져 죽던 그 여름밤, 제갈처럼 입에 물린 옥춘의 단물 섞인 침을 줄줄 흘리면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아이처럼 따라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봤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았을 뿐, 진짜 어머니가 아버지를 우물로 밀어 넣었는지는 모른다.

애써 덮어두었던 옛 기억들이 때마침 시작된 소나기와 함께 쏟아지기 시작하자, 온몸에 한기가 든다.

그렇다, 나는 저 우물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눈, 나를 바라보던 지나치리 만치 고요하고 새까맣던 그 두 눈이 무서워 이 집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왜 나를 미워했던 것일까? 내가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봤기 때문에? 아니면, 점점 아버지와 똑같아지는 아들의 모습이 끔찍하게도 싫으셨던 것일까?

어머니는 나도 저 우물에 밀어 넣고 싶으셨을까?

누님 방에서 나와 비 떨어지는 처마 밑으로 얼굴을 가져가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려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까 일어나자마자 서울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때 늦은 후회를 해본다.


사방으로 짙은 어둠이 내리고 점점 거세지는 빗소리 사이로 저 멀리 우물 덮개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밑에는 아직 아랫도리가 발가벗겨진 채 고꾸라져 있는 아버지가 있고, 그 우물 옆을 무표정한 어머니가 지키고 서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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