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오늘, 나를 버리러 간다.
낡은 식칼 같은 어선의 뱃머리가 바다의 배를 가르며 앞으로 내달리고, 하늘 위로는 갓난아기를 잡아먹은 것 같은 울음을 내는 커다랗고 새하얀 갈매기들이 날고 있다.
새우깡이라고 한 봉지 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 전 TV에서 사람이 주는 새우깡을 낚아채가는 갈매기의 영상을 보고 나도 언젠간 배를 타게 되면 꼭 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오늘 배를 탄 나와 먹이를 기다리는 갈매기도 있었지만 새우깡은 없었다.
잠시 새우깡이 있는 척 손을 뻗어볼까 했지만, 너무 유치한 장난 같아 그만둔다.
나는 오늘 아빠와 함께 본 적도 없는 친할머니가 살고 있는 아빠의 고향, 미도라는 섬으로 가고 있다.
아빠의 말로는 제법 큰 섬이라 마트도 있고 식당도 많으며, 다른 아이들도 있어 심심하진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글쎄... 늘 허풍과 거짓말을 일삼는 아빠의 성격으로 봤을 때 아마 대부분이 뻥일 것이다.
후...
자꾸만 한숨이 쉬어진다.
그렇게 13년 내 인생의 최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며 섬 부두에 배가 들어서기 위해
속력을 줄이고 시끄럽던 엔진 소리가 점점 잦아질 때쯤 아빠는 재빠르게 짐 가방을 들고 배에서 내린 후 나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수영아, 빨리 내려서 여기, 할머니한테 인사드려”
‘할머니?’
아빠의 말에 고개를 들어 자세히 보니, 아빠 옆으로 키가 작고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할머니 한분이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은 뒷짐을 진채 서 있으셨다.
나는 애써 못 본척하며 뱃머리를 밟고 부두에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빠의 엄마이며, 나와 한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같이 살게 된 할머니라는 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뭐라고 뒤에 더 말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더 이상의 어떤 말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있었다.
이런 나를 빤히 쳐다보시던 할머니도 “아가 많이 작네?” 하는 말 외에는 더 이상 어떤 말도 없으셨다.
서로 처음 만난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있는 아빠는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요란하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해결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자기변호와 나를 이곳에 떨구는 데에 있어서 느끼는 아주 작디작은 죄책감과 미안함 들을 지우기 위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아빠는 나와 할머니를 부둣가에 세워둔 체 뭍으로 다시 나가는 어선을 타고 도망치듯 떠나 버렸고, 역시나 아빠가 설명한 섬에 대한 것들은 다 거짓말이었다.
미도라는 섬은 크지도 않았고 많다던 마트와 식당들은 가끔 찾아오는 낚시꾼들을 상대하는
한 건물에 슈퍼와 칼국수집을 겸하는 곳이 다였으며, 다른 아이들은커녕 어른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 작고 초라하며 우울한 외딴섬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방학 동안 이곳을 찾아오는 아이가 하나둘 정도는 있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나는 3일 내내 할머니의 집 마루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지쳐 할머니가 알려주신 그 아이를 찾아 고개 넘어 큰 감나무집이라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
할머니 집에 컴퓨터 한 대라도 있었다면, 내 핸드폰이 터지기만 했다면 찾지 않았을 아이.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을 뻘뻘 땀을 흘리며 절반쯤 오르던 그때, 내 등 뒤로 낯선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운다.
“야~ 넌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이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깡마른 체구에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과 가늘고 긴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아이가 서있다.
“네가 감나무집 아이야?”
밑도 끝도 없는 나의 물음에 그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언덕을 오르면서 처음 보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여름 방학 동안 할머니 집에 있을 거라, 당연히 그 할머니 집은 이 섬에 있고...
컴퓨터는 없고 핸드폰도 안 돼서, 그러니까... 나는”
한 번에 막힘없이 내 소개를 하고 싶었는데 바보같이 말이 꼬여버렸다.
그때 그 아이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그러니까 심심해서 할 수 없이 나를 찾아온 거라는 말이지?”
간단하게 나의 할 말을 끝내고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자기를 소개했다.
“난 강민이야, 12살이고 나도 엄청 심심했는데 잘됐다 같이 놀자~”
순간 난 조금 당황했다. ‘12살?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데 동생이라니...’
“어, 나는 이수영이야 나이는 안 믿을지도 모르는데 13살이야 확인하고 싶으면 우리 할머니한테 물어봐도 돼”
나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제일 작고 약했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아서 남들보다
성장이 조금 느린 것일 뿐이라던 엄마의 말을 이제는 믿지 않는다.
“푸하하하~ 내가 왜 그런 일을 확인해야 하는데? 형 진짜 웃긴다~”
강민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한참을 웃었다.
‘형이라니, 처음 듣는 말이 왠지 기분 좋다’
“내가 너무 작고 말라서 아무도 나를13살이라고 믿지 않거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변명 같은 사실을 말한다.
“형~ 이리 와봐 내가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데를 알려줄게~”
강민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며 손짓했다.
“잠깐 기다려, 더워 죽겠는데 높은 데를 왜 올라가냐?”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강민의 뒤를 쫓아 빠른 걸음과 달리기 사이의 속도로 따라갔고,
강민은 이 섬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이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쉴 새 없이 설명했다.
“저건 산수유나무야, 저건 이 섬에서 제일 큰 소나무고, 저 파란색 지붕 보이지?
저 집에는 엄청 큰 도사견이 있어, 그리고 아, 방아깨비다! 형~ 방아깨비 잡아줄까?”
“야, 너는 어떻게 쉬지도 않고 계속 말을 하냐?”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 되는데, 강민은 이 길을 수 없이 다녀서 그런지 지친 기색도
없고, 왠지 땀도 흘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힘이 넘쳤다.
그에 비해 나는 갑작스러운 등산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는데 이런 나에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강인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긴팔과 큰손, 강민이 내민 손을 바라보며 느낀 것은 부러움이었다.
강민이 내민 손을 맞잡고 이끌리고 있는 짧고 가느다란 하얀 내 팔과 손이 싫다.
“우와아~ 굉장하다”
강민이 데려온 것은 진짜 이 섬의 가장 높은 곳이 맞았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섬의 모든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어선들과 바닷속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뭉게구름까지 모든 게 완벽한 가짜 같은 진짜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강민과 나는 한참을 절벽 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다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나란히
걸어서 내려왔다. 물론 그때도 강민의 수다는 끝이 없었고, 중간에 만난 독사뱀에 놀라 펄쩍 뛰는 나를 보고 한참을 깔깔대거나, 새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보이는 데로 모두 따 먹고, 긴 나뭇가지를 휘두르면서 아까 처음 본 곳까지 내려와 내일 다시 놀기로 하고 헤어졌다.
“흠~ 흠~ 흠~”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문을 밀고 들어온 나를 할머니가 빤히 쳐다보시며,
“그 아를 만나서 놀았나 보네?” 하신다.
나는 “네~ 내일도 같이 놀기로 했어요~”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신기했다. 언제나 게임기와 놀았는데, 친구랑 노는 게 이런 걸까? 시시하고 바보 같은 짓만 하다 왔는데도 재미있었다고 느껴지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그날 밤 배앓이를 살짝 했다.
아마 처음 먹어본 산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처음 먹어보거나, 아니면 늘 먹던 음식도 오랜만에 먹을 때면 어김없이 배앓이를 했다. 나는 배앓이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 거리는 사실을 할머니에게는 물을 많이 마셔서 오줌이 자꾸만 마렵다고 거짓말했고 강민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다.
유난하고 약하고, 예민한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1살 어리지만 2살 형같이 큰 강민과 함께 섬의 여러 곳을 쑤시고 돌아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다. 강민은 진짜 이 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나무나 꽃, 풀에서부터 곤충, 개구리, 두더지, 민물고기나 바닷 물고까지 모든 것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신이 나는지 크게 웃으며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양쪽 어깨를 으쓱거린다.
“저쪽이야, 저쪽에서 내려온다”
“어디? 어디?”
첨벙첨벙 냇가를 휘저으며 강민이가 가져온 그물로 송사리 떼를 잡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만, 건져진 그물에는 돌멩이 몇 개와 소금쟁이들뿐 송사리나 붕어는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뭔가를 잡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 행동이 너무 재미있어 빈 그물만 들어 올리면서도 우리는 몇 번이나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소리치며 물고기를 그물로 몰았다. 그칠 줄 몰랐던 우리의 놀이를 멈추게 한건 난데없이 쏟아진 소나기였다.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깔리는 듯하더니 거짓말 같은 세찬 비가 퍼부어 강민이와 나는 근처 빈집 마루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온 그 집은 사람들이 떠난 지가 오래인지 안마당과 부엌 안까지 잡초가 듬성듬성 길게 자라나 있다.
“허락 없이 막 들어와도 되는 거야?”
빈집인 줄 알고는 있지만 나는 강민에게 물었고,
“아마도 괜찮지 않을까? 뭘 훔치러 온 것도 아니고 비를 잠시 피해서 온 거니까, 여기에 사람이 살았어도 그 정도는 괜찮다고 했을걸?”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빨리 비가 그치기만 바라며 바지 주머니에 있던 미니 초코바를 꺼냈다.
가져올 때는 분명 4개였는데 아까 물고기를 잡다 주머니에서 빠졌는지 세 개밖에 없었다.
나는 두 개를 강민에게 내밀었다.
“자, 초코바 먹어”
강민은 초코바를 받아 들고 잠시 나를 쳐다보다 물었다.
“형은 한 개인데, 나는 왜 두 개야?”
“원래 동생이 하나 더 먹는 거야~”
“진짜? 신난다”
즐거워하며 초코바 비닐을 뜯어 조심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때는 진짜 강민이가 동생 같아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빈집 마루에 앉아 초코바를 녹여먹으며 어두웠던 하늘이 다시 파랗게 빛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날 강민이는 나와 꼭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강민은 아빠와 단둘이 산다고 했다. 엄마가 직장을 구하고 둘이 살만한 집을 장만하면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강민의 얼굴이 나와 닮은 듯 달랐다.
아마 강민 부모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가 보다.
우리 엄마는 저런 약속도 없었는데, 강민이가 아주 조금 부럽기도 하면서 아주 많이 불쌍했다.
어른들은 약속을 쉽게 잊고, 사과하는 법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강민이는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모를 텐데... 아빠는, 아빠는 나를 다시 데리러 오기는 할까?
매일매일 전화한다던 아빠는 연락 한번 주지 않는다.
만약 이대로 이곳에서 계속 할머니와 살게 되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
그래도 나는 여름방학 내내 강민이가 있어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여름 방학이 끝나간다.
강민은 다시 학교가 있는 뭍으로 갈 것이고 나도 아빠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야 했겠지만,
왠지 나는 이곳에 혼자 남아있을 것 같은 예감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아빠에게서 전화 한번 없었고, 할머니는 오늘 이 섬 이장님과 함께 뭍에 나가 내 학교 문제들을 알아보시러 나간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시골 학교니까, 강민과 같은 학교겠지? 학년은 다르지만 어쨌든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섬에서 학교까지 배를 타고 통학하는 아이는 나밖에 없을 텐데, 그게 가능할까?
강민은 진짜 방학 동안에만 이곳에서 지내는 걸까? 나와 같이 다니면 안 되는 걸까?
좀 이따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그날 강민이를 만나지 못했다.
언제나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언덕으로 가면 강민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먼저 나와 있지도 않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설마 뭍으로 나간 걸까? 이렇게 말도 없이? 아니면 오늘 하루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일주일 정도 방학이 남아있고, 강민이는 나와 노느라 한 번도 섬 밖을 안 나갔으니까
아빠와 함께 일을 보러 나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아무 말없이 떠날 아이는 아니니까 하는 생각에 좀 더 기다려보다 발길을 돌려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걷는 무거운 발걸음과 만나지 못한 강민 때문에 왠지 힘이 조금 빠졌다.
혹시라도 나와 같이 이 섬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차라리 확실한 불가능 보다 하루라도 더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다행인 것일까?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쉬며 대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신 할머니가 대뜸 크게 소리치셨다.
“니 지금까지 누구랑 놀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