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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아이 1-2

단편 3

by 김연주


“니 지금까지 누구랑 놀았다고?”


달려오다시피 한 할머니가 내 얼굴 바짝 붙어 따지듯 묻자, 당황한 내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네? 뭐라고요?”


“네가 여태껏 놀던 아가 현수 맞나?”


“현수요? 현수가 누구예요? 저는 강민이랑 놀았는데요, 할머니가 알려주신 감나무집 아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반히 쳐다보시던 할머니가 갑지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떨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팔을 잡으며,


“할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할머니의 흐린 두 눈동자가 떨린다.


“아까 뭍에 나갔다 돌아오는 배에서 현수 아비를 만나가, 현수가 너랑 놀고 있어서 참만 다행이라 했더니만... 그 양반이 현수는 학원인지 뭔지 때문에 시내에 있는지 이모 댁에 있다고 하더라...”

“아~ 그래요? 전 현수란 아이는 몰라요, 강민이랑 놀았어요 키 크고 피부가 까맣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요”


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인 줄 알고 놀랐다가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어깨를 으쓱거리면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그 아를 어디서 만났나? 집에 있더냐?”


할머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또다시 강민에 대해 물었다.

“집은 아니고 걔네 집으로 가는 언덕길 중간쯤에서 처음 봤고, 맨날 거기서 만나 놀았어요”


“오늘은? 오늘도 봤나?”


“아니요, 오늘은 만나지 못했어요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집으로 찾아가 보려다 너무 늦은 것 같아서 그냥...”


나는 끝가지 말을 하지 못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는 할머니 얼굴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저녁도 안 드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봐도 할머니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신다.

'뭘까? 왜 저러시지는 걸까? 강민이랑 노는 게 싫으신 걸까? 나쁜 아이? 아니다 강민이는 내가 아는 부류의 나쁜 아이는 절대 아니다. 그럼 무슨 병이 있나? 옮기는 질병 같은 거... 아니다 그런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강민이는 누구보다 건강하다, 온갖 병을 가지고 있는 건 강민이가 아닌 나다. 어릴 때부터 문턱이 닿을 정도로 다니던 병원들과 작고 왜소한 체격과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에게 흡혈귀와 병원균 공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왕따를 당한 건 나였으니 강민이가 이상한 병을 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고 낯선 어른들의 말소리에 잠이 깨어 방문을 열어보니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이 섬의 이장님과 모르는 얼굴의 아줌마와 아저씨 한 명 그리고 할머니가 마당에 서 있었다.

“수영아 오늘 아비 온다 했으니까 당장 짐 싸고 지금부터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 알았재?”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말씀에 잠이 덜 깬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아빠가 온다는 말에 안도와 기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늦게, 진짜로 아빠가 할머니 집에 나를 데리러 왔다.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이 나를 버려두던 아빠가 미웠는데 막상 아빠의 얼굴이 보니 울음이 터져버렸다.

언제쯤 잠이 들었던 걸까? 잠든 내 등 뒤로 마주 앉은 아빠와 할머니의 말소리가 졸음에 섞여 몽환적인 울림으로 들렸다.

“죽은 아이랑 만나서 놀았다는 게 말이 돼요?”

“나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수영이가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아 생김새랑 나이까지 알고 있는데, 이걸 무시할 수 있냐?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태껏 한 달을 매일같이 만나 놀았다는데... 나는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할머니가 냉수를 들이켜는 소리가 난다.


“나원참, 지 아빠가 3년 전에 죽인 아이랑 맨날 놀았다니... 설마 수영이가 이상한 거에 씌거나 한건 아니겠죠?”


“모르지, 그런데 이런 일이 두어 번 있었다, 지금 다 뭍으로 나간 현수나 지영이도 갑자기 죽은 강민이를 봤다고도 했고, 낚시하러 오는 아비들 따라 들어온 육지 애들이 강민이랑 비슷한 아랑 놀다 왔다는 일도 몇 번 있었다, 분명 억울해서 하늘로 못 가고 여기서 맴돌다 지 또래 친구들이 그리워가 같이 놀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원참 무슨 삼류 공포영화도 아니고...”


“어쨌든 빨리 수영이 뭍으로 내보내야 한다, 산 사람이 죽은 아랑 붙어 있어서 좋은 게 뭐가 있겠냐? 여태껏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고 하늘이 도운기다, 너도 딴 소리 말고 단칸방이든 지하방이든 니 새끼 꼭 끌어안고 살아라, 어미한테도 계속 찾아가 용서 빌고 알았재?”

이해할 수 없는 아빠와 할머니의 대화.


‘강민이가 죽은 아이라고? 아니다 강민이는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아이다.

자기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엄마를 기다리는 착한 아이, 강민이는 죽지 않았다.

내일 꼭 만나야 한다, 아무 말 없이 섬을 떠나면 강민이가 무척 서운해할 거다’ 하는 생각을 하다 다시 깊은 잠으로 빠졌고 아빠와 할머니는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뜬눈으로 나를 지켰다.

섬을 떠나기로 한날 눈 떠보니 내 뒤로 아빠와 할머니가 잠들어 있었고 시간은 아직 이른 새벽 5시였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강민이와 만나던 장소로 달려갔다.

어른들이 뭐라 하던 강민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떠날 수는 없는 거니까...

헉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런 시간에 강민이가 나와 있을 리 없다, 곧장 집으로 가봐야 하겠지? 하지만 언덕 중간쯤 다다르자 저 앞에 강민이가 웃으며 서 있었다.


“강민아~”


“형, 이렇게 일찍 웬일이야?” 강민이가 웃는 얼굴로 묻는다.


“나... 오늘 아빠랑... 이 섬 떠나는 날이야, 너에게 인사하려고...”


숨이 차올라 말하기가 어렵다.

“정말? 다행이다 형~”


“응,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계속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너랑 나랑 둘이 여기서 배 타고 학교 다니면 안 되는지 물어보려고 했었어”

“진짜? 형이랑 같이 배 타고 학교 다니면 엄청 재밌겠다”


“근데 강민아... 저기...”

묻고 싶은 말이 있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머뭇거리는 나를 바라보던 강민이가 씩 미소를 지으며 “궁금해? 내가 죽은 사람인지? 살아있는 사람인지?”

장난기 섞인 말투 때문일까? 분명 무서운 이야기인데 나는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응... 아빠랑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네가 3년 전에...”


“맞아, 3년 전에 우리 아빠가 나를 죽였어”

“말도 안 돼,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죽은 사람이라고? 한 달 동안 매일매일 놀았는데 손도 잡고 음식도 나눠먹었는데 세상에 그런 귀신이 어딨 냐?” 하고 따지듯 물었다.

“히히 나도 형이 처음이야 잠깐씩 나를 보거나 이야기한 아이들이 몇몇 있었지만, 형처럼 이렇게 가깝게 오랫동안 나랑 놀 수 있는 사람은 없었거든”


말도 안 된다, 이건 꿈일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형 이제 가면 못 보겠네?”

“응? 아... 아마도 그럴걸? 하지만 아직 할머니가 여기 계시니까... 그런데 너는?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거나 뭐 그런 거 아니야?”


“말했잖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고, 엄마가 나를 찾아 다시 이 섬에 오면 그때, 엄마 얼굴 보고 하늘로 갈 거야”


“엄마는 네가 죽은걸 모르... 셔?”


“아마도... 하지만 언젠간 알게 되겠지? 그럼 내 무덤이 이곳에 있으니까 보러 오지 않을까? 한 번쯤은 오겠지 뭐~”


마치 장 보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강민의 말투에 마음이 아팠다.


“강민아 나는 아빠랑 이곳을 떠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는 몰라, 우리 아빠는 언제나 사람들한테 얕은 수법으로 사기나 치다 걸리고, 허풍과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금방 다시 할머니한테 나를 맡기러 올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게 안되더라도 내가 한 번쯤은, 꼭 한 번쯤은 널 보러 올게... 그때 네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를 보고 하늘로 떠난 것이니까 축하해 줄 거고,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우리 다시 같이 놀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약속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혼자 남겨져 있을 강민이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와~ 진짜? 나야 좋지, 형 꼭 약속한 거다?”

“응, 약속”

서로 건 새끼손가락과 꾹 찍은 엄지 도장에서도 나는 무서움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한참을 나를 보며 쑥떡 거리는 섬사람들을 뒤로하고 할머니에게 인사하며 뭍으로 나가는 배에 올라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섬과 할머니를 바라보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 절벽 위에 서서 손을 흔드는 강민이가 보였다.

나도 있는 힘껏 팔을 세차게 흔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안녕, 잘 있어, 꼭 엄마가 찾아오기를 바랄게’


어느새 흐르던 눈물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 반짝이고 먹이를 찾아 날아오른 갈매기들이 하늘을 배회한다.







그 후 아빠와 다시 살게 된 나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다. 단칸방을 전전하기도 하고, 맨날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치다 구속된 아빠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았으며 중학교 내내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빠의 구속 때문에 엄마와 같이 살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인 걸까?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으로 살아있는 진짜 친구가 생겼다.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왠지 강민이와 느낌이 비슷한 같은 반 아이와 친해져, 그 친구로 인해 몇몇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3년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큰 반대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군 입대를 앞둔 지금, 나는 미도로 향하고 있다.


강민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이 섬을 떠나고 2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절대로 이 섬에 나를 데려오면 안 된다고 못 박으셨던 할머니 말씀 때문에 아버지는 혼자 이 섬으로 와 장례를 치르고 나에게는 1년이 지나서야 할머니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이 섬을 떠난 지 8년 만에야 다시 오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그 사이 이 섬은 낚시 명소로 TV에 여러 번 소개되면서 제법 많은 낚시꾼들과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게 변해있었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강민이와 만났던 언덕을 오른다.


다행히 그 길만은 변함이 없었다. 한참을 올라 언제나 만나던 장소까지 왔지만 강민은 보이지 않는다. 내친김에 자주 올랐던 이 섬의 가장 높은 곳, 강민이가 엄마를 기다리며 서있던 곳까지 산길을 헤치며 올라가 본다.


더 이상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길은 험했지만, 혹시나 그곳에 아직 강민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풀숲을 헤치며 도착해 보니, 다행히 그곳에도 강민이는 보이지 않았다.


안도와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아쉬움 같은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잠시 절벽 아래로 한눈에 보이는 섬 마을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크고 작은 배들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 산길을 내려오면서 만약 강민을 다시 만났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정말 어릴 때처럼 아무렇지 않았을까? 아니면 겁에 질려 냅다 도망쳤을까? 강민이는 엄마를 보고 하늘로 잘 올라간 것 일가? 아니면 내 주위에 있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내 안의 질문들...


나는 언덕을 내려와 할머니 묘에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강민이는 어디쯤 묻혀있을까? 그때 이 섬에 자신의 무덤이 있다고 했을 때 자세히 물어볼 것을,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페허가 된 할머니 집에도 들러본다.


큰 풀들과 덩굴식물 식물이 들어찬 마당으로 들어와 마루에 가득한 흙먼지를 털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언젠가 강민이와 함께 소나기를 피해 빈집에 앉아 나눠먹던 초코바가 생각났다. 정말 맛있게 먹던 강민이, 초코바를 그렇게 맛나게 먹는 귀신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귀엽다.

“거 누구요? 누군데 거기 들어가 있는 거요?”


조용한 회상을 깨는 낯선 이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들어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 사시던 할머니 손자입니다, 오랜만에 섬에 왔다가 잠시 들러 봤습니다”

웃는 낯으로 말하는 나를 얼굴 가득 주름 사이로 빤히 쳐다보시던 할아버지는 대뜸 ,

“네가 창우 아들이 가? 몇 년 전에 잠시 왔다 간?”


“아, 예 맞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를 기억해 내신 듯한 할아버지는,


“또 뭐 하러 왔어? 네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 듣지 못했나?”

역정 내듯 물으시는 할아버지는 빨리 밖으로 나오라는 듯 고갯짓을 하시며 서있었다.

어차피 배 시간 때문에 일어나야 했지만, 왠지 강제적인 명령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애써 웃는 얼굴을 하며 집 밖으로 나와 부둣가로 걸었다.


그리고 묻지 않은 물음에 혼잣말로 대답을 하시는 그분 덕분에 알게 된 사실로는 내가 이 섬을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섬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강민의 혼을 달래기 위한 굿을 했다는 사실과 몇 달 후 강민의 엄마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듣게 된 자식의 비참한 죽음으로 인해 미친 사람처럼 몇 날 며칠을 강민의 무덤가에서 울부짖다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 한가득 실린 관광객 틈 사이를 비집고 서서 멀어져 가는 미도 섬의 맨 꼭대기 절벽을 바라본다.


떠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던 강민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약속을 잊지 않고 찾아온 강민이의 엄마, 남편이었던 사람이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얼마나 괴롭고 슬펐을까? 그런 엄마를 보고 강민은 또 얼마나 울었을까? 강민은 엄마에게도 모습을 나타내었을까? 이제 괜찮다고 엄마를 봤으니까, 정말 괜찮다고 엄마를 위로해 주었을까?


강민아 너는 지금 하늘에서 행복하니?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하며 희미해질 정도로 멀어져 버린 섬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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