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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May 04. 2024

농담이 너를 구원할 거야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캐서린 베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아니 눈은 뜨지 못했다. 정신은 깨어났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뭄을 웅크렸다. 웅크린 몸을 조금 돌려 엎드린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기도.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주제에 살려달라는 의미 없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무슨 일인가 일어났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시간은 착실히 흐르고 일상은 끊임없이 알람을 울렸다. 잠시 후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할 것이다.  몸을 일으켜 남아 있는 힘을 그러모아 사과를 깎고 김에 밥을 싸고 아이들의 물통에 물을 채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아이들이 나가는 모습을 배웅하면 끝. 그리고 다시 스르륵 침대 위에 장렬히 전사할 것이다.

 게으른 주부를 얼마나 이해할 수 없어했던가. 이런 내 모습을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나이가 되면 다들 그런 면이 있지만 야, 너는 특히 빛을 잃은 게 안타까워."


직장생활을 같이 하던 언니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정말로 반가웠고 나는 언니 앞에서 애쓰지 않고도 쾌활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언니 눈에도 나는 빛을 잃어 보였다는 건가?

 언니와 헤어지고 집에 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해석을 잘못한 건가? 무슨 뜻이지? 물어볼까?


 손을 뻗어 서랍 속에서 조그만 노란색 파우치를 꺼내 들었다. 침대에 스러지듯 누워서 가만히 파우치를 흔들었다. 아주 작은 약알갱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치치치치 같기도 하고 착착착 같기도 한 경쾌한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어둠이 몰아쳤다. 온갖 불안과 부정의 파도가 순식간에 밀려오자 나는 손쓸 수 없이 무너진다. 약 대신 손을 뻗어 책을 펼친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캐서린 베이






-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윈터링에 대한 감 같은 것이 생겼다. 얼마나 오래갈지, 얼마나 깊을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할지. 중략. 이 시기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는 시도도 멈춰야 한다. 겨울은 실재하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산산이 부서진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고의 지혜는 우리보다 앞서서 이 특별한 겨울을 겪어낸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윈터링의 진실이 놓여 있다. 겨울에는 지혜를 얻게 되며, 겨울이 끝나고 나면 누군가에게 그 지혜를 전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먼저 윈터링을 겪은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때로 우리 둘은 울어서 홍수를 만들고, 그래서 온 세계 즉 우리 둘을 익사시키기도 했다.






타인의 아픔을 이불로 삼는 일은 정말 초라하지만

이 겨울이, 이 추위와 어둠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보다 더 위로되는 것이 있을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맞이한다.

아이는 나를 꼭 안아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헤헤헤 웃는다.

 

가방을 내려두고 옷을 던져두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너 왜 그러고 있어?"

"세월을 낚는 중이라오."


마침내 웃었다.

어떤 희망 같은 것이

옅게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너의 농담이 나를 구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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