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 가을: 제7부]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을 열면 불암산이 멀리 보이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북한산을 마주할 수 있다. 또한 본가를 가는 길에는 도봉산을 볼 수 있기에 그만큼 산은 나에게 매우 친숙하다. 예전에는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하며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명산인 도봉산과 북한산이 있는 동네라는 것을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산이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에 주말이면 가족들과 운동삼아 등산을 가곤 했다. 산 꼭대기는 아니지만 우리끼리 정한 정상이 있었다. 아버지는 오늘은 장수 헬스장까지 가보자 혹은 뽀삐산까지 가보자 이야기를 하며 등산 코스를 정하곤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면서 산도 계절에 맞는 옷을 갈아입듯이 나 또한 산과 함께 성장해 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더 재미난 것들에 눈을 돌리며 산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일상생활을 마비시킬 때쯤 다시 산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스크를 항상 착용해야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운동을 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을 가게 되면 좋은 공기도 마실 수 있고 조금은 답답한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에 많은 젊은 층에게 등산은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흐름에 탑승하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흙냄새와 풀잎냄새도 좋았고 산 중턱에 있는 절을 지날 때 흘러나오는 목탁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기분 좋은 경험 덕분에 너무 무더운 여름이나 너무 추운 겨울을 빼고는 한 달에 두 번은 등산을 간다. 그리고 누군가가 등산을 왜 좋아하냐고 질문한다면 난 두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등산을 갈 때 인왕산과 같은 고도가 낮은 산을 제외하고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데 평균적으로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쉬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이기에 운동시간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끈기가 약한 내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2시간 이상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산은 그 쉽지 않음을 가능하게 만든다. 중간에 포기를 하고 하산을 하려고 해도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기에 이양 올라온 김에 조금만 더 참고 가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르락내리락하며 힘듦을 이겨내고 정상을 도착했을 때에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별 것 아닌 활동을 자주 반복하다 보면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차츰 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따뜻한 날씨가 아닌 사람들의 친절함이 따뜻해서 좋다. 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도와주는 것이 쉬워진다. 더 나아가 짧은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고 길을 헤매게 되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 쉽게 느낄 수 없는 친절함이다. 동네 이웃과도 인사를 하거나 짧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길을 지날 때 모르는 사람과는 더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은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포장(직업, 나이, 어떤 개인정보)도 붙지 않아 사람 그 자체로 보게 되어서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그저 나도 타인도 등산을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와 벗어난 곳이기에 생활소음이 없을뿐더러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방문하기에 모르는 타인에게 더 유해지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국 하면 “정”이라는 단어를 대표할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 말은 어려운 단어가 되었다. 원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더 애가 타듯이 등산을 갈 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유년시절 거리낌 없이 이웃들과 인사하고 친하게 지냈던 그 따뜻함 같아서 좋다. 아무래도 나는 산에게 정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