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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Sep 27. 2023

그녀만의 사진 찍는 방식

다리 길게! 다리 이쁘게!

그녀와 데이트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서로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서로의 시간을 배려하느라 자주 못 만난 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번은 만나려고 했다. 그녀가 원한 것도 있지만, 나도 그렇게 만나는 것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만날 때면 난 그녀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폰을 하나 더 챙겨 다녔다. 난 갤럭시 유저라 평균적으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집에 있던 아이폰을 가지고 다녔다.


그녀를 찍어주는 건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게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지만, 그렇게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자진해서 누군가가 나를 찍어주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그녀에게 나만의 스타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와 만날 때면 괜찮은 장소가 나온다거나 이쁜 장면이 연출되면 거침없이 아이폰을 꺼내 영상부터 사진을 무한정 찍어 되었다. 


난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이었다.

그렇게 유튜브를 통해 배운 사진 잘 찍는 방법 등으로 근근이 사진 잘 찍는 척을 하며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녀는 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지금 기억하면 다리가 이쁘게 찍히는 것이었다. 다리가 얇고 길게 나오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것에서 뒷받침이 되는 건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사진 찍는 걸 잘 못했던 난 그렇게 무한정 촬영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몸매가 이뻤다. 

그녀는 만족을 못하는 듯했지만, 내가 사진으로 봐도 두 눈으로 봐도 패션디자인을 전공으로 한 내가 감히 판단하자면 몸매가 이뻤다. 물론 더 이쁘게 보이려는 사람의 욕심을 누구 막겠냐만은 그녀는 만족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사진을 찍어라는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수없이 많은 사진 중 유독 자연스럽고 몸매가 이쁘게 나온 사진을 고르는 걸 보고, 그녀와 내가 그녀 자신을 보는 눈은 다르구나 생각을 했었다. 


사진을 많이 찍고, 영상을 찍으려고 노력한 건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솔직한 의미에서 그때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한 행동이었다. 얼마 사귀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한다면 결혼식에서 식전에 띄워주는 두 사람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남들과 똑같지 않은 영상과 사진의 조합을 위해서도 있었다. 결혼식을 많이 다녀본 사람으로서 식전의 영상을 보면서 나도 이쁜 영상과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지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으로서 좋은 모델이었다. 그녀의 리액션이 즐거웠고, 그녀와 대화하는 영상에서는 쉴 새 없이 대화하는 모습으로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날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슬쩍슬쩍 웃을 수 있게 하는 그런 모델이었다. 


난 그녀가 원하는 이쁜 사진을 찍어 주진 못했다. 

그저 많이 찍고, 머릿속 잊혀 가는 희미한 형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게끔만 했던 것 같다. 


데이트 때마다 사진을 찍던 그 아이폰은 헤어짐 이 후로 나의 실수로 고장이 나버렸다. 회사에서 지급해 준 복지 중 하나였던 그 아이폰은 이제는 그녀를 기억하게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난 나의 행동. 내가 그녀를 열심히 추억하기 위해 했던 그 행동만 기억에 남은 채 아직도 짧았던 그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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