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올리기 위해 페달을 열심히 올리면 시원한 바람이 어느새 서늘해짐을 느낀다. 물론 사람도 많아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달리지는 못하지만, 가끔 사람이 없을 때는 최고 속도로 달리다 보면 주변환경이 아주 빠르게 바뀌는 걸 느낀다.
평소 산책을 하다 자전거를 사면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조금 더 많다. 자전거를 타면 30km 정도는 달리는데 거리에 비해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평소 산책하는 시간과 동일하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에 맥주를 하나 사서 돌아가리라 마음먹으며 늘 페달을 굴린다.
난 술을 자주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처음 본 사람들도 나에게 술 못 마시면 안 먹어도 된다라고 할 정도로 얼굴에 쓰여있는 것 같다. 난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안 마실 뿐이었다. 맛있는 음료 놔두고 굳이 쓰고, 알싸한 음료를 마셔야 된다는 이성적 판단이 거부를 한 것이고, 취하면 머리도 아프고, 속도 거북하기에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 물론,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취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딱 한번 어렸을 때 변기를 잡아본 기억이 있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한 적 이 두 번이 다이다. 그렇게 난 술을 즐기지 않는 스타일이다.
최근 몇 개월부터 맥주와 소주를 거의 매일 마시는 것 같다. 알코올 중독은 아니고, 그저 국밥 먹을 때 소주 반 병, 자기 전 씻고 맥주 한 캔 정도 마시는데 그렇게 나쁜 기억이 아닌 것 같아서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다음날 무슨 일이 있거나 그러면 굳이 마시지는 않는다.
마트에 들러 맥주를 고르는 일은 나에게 초조함을 주는 일 중 하나이다. 그런 경험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이소를 가거나 올리브영을 가서 뭔가를 고르거나 하면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 빨리 안 골라도 되는데, 이상하게 초조한 것인지 배가 스리슬쩍 아파짐을 느낀다. 맥주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인데, 수없이 많은 맥주를 보고 있노라면 무엇을 마시지, 저번에 마신 건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면서 맥주를 고르게 된다. 결국 늘 마시던 맥주를 1개를 넣고, 새로운 맥주를 1개 넣게 되지만 그저 맥주를 마신다는 행복함 보다는 초조함으로 빨리 골라서 가야지라는 생각뿐이다.
그녀는 흑맥주를 좋아했다.
흑맥주 중에서도 코젤이라는 맥주를 좋아했는데 캔으로 마시는 것보다 유리잔에 코젤을 부어 놓고 그 잔 끝에 시나몬설탕을 묻혀서 마시는 걸 좋아했다.
난 흑맥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술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특히 흑맥주의 그 약간 신맛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녀와 흑맥주를 마신건 오래된 호프 같은 곳이었다.
바깥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유독 그 호프에만 사람이 없었다. 있더라도 오래된 단골 같은 사람들만 앉아 있고, 호프라고 말한 바와 같이 정말 소파부터 테이블, 거기 안주까지 뭔가 "조끼조끼" 같은 느낌의 호프였던 것 같다. 그곳도 흑 생맥주를 더군다나 코젤을 생맥주로 판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간 거라 분위기나 이런 건 따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 길을 걸어가다가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을 분위기 좋은 곳과 호프 둘 중에 선택권을 주었는데 눈앞에 있는 호프를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때 난 흑맥주위에 설탕을 묻혀 먹는걸 처음 봤고, 처음 먹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내가 한잔 먹을 때 두 잔을 먹었다. 난 그 두 잔 중 1/4을 빼앗아 먹었다.
나름 맛있었다.
달콤한 맥주.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듬뿍 넣은 듯한 그러한 맛.(처음 아메리카노를 먹었을 때 난 시럽을 넣어 먹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흑맥주에 대한 나의 편견이 조금이 바뀐 것이.....
그 이후에 그녀와 맥주를 마시거나 길을 걷다 보면 흑맥주를 생으로 파는 곳을 조금씩 찾아보았고, 메모를 해두었다. 나도 조금은 좋은 장소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나고, 언젠가는 같이 갈만한 장소를 그녀에게는 모르게 자랑스럽게 아는 척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녀는 내가 그렇게 메모를 해두고, 미리 저장을 해 둔 건 모르지만, 사실 이제 쓸데는 없지만....(혼자서 술 먹으러 가지 않는 스타일이다 난)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맥주를 고르면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코젤 맥주를 보면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차가워진 밤의 온도만큼이나 이제는 차가워진 그녀를 생각할 때면 언젠가 혼자서 흑맥주를 먹어보리라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