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 한 스푼, 당당함 한 스푼
대전에서 결혼식을 해서 대학교 후배의 차를 빌려 타고 부리나케 달려가 축하를 했다.
대학교 친구들의 모임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점점 줄어들수록 나도 마음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축하를 해주며 마음 한편에 부러움을 가지고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올라왔다.
10월은 연휴가 많은 날이다. 그래서 결혼식 이후에 뒤풀이를 한다는 핑계로 오래간만에 대학교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한잔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한동안 하지 않은 뒷이야기부터 늘 변함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술잔을 한잔 두 잔 기울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까지 마시던 술은 지금에는 12시가 되기도 전에 모임을 파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들은 나름 성장했구나, 현실적으로 각자의 가정을 지켜야 하고, 혹은 내일을 생각하게 되었구나를 생각하며 정신적 성숙을 느꼈다. 물론 나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택시를 타며 돌아오는 길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제는 그렇게 하기 힘든, 싫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성장을 일궈낸 친구와 나를 칭찬했다.
꽤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평소에 마시던 주량보다 많이 마셨지만, 정신은 멀쩡한 상태로 늘 돌아오는 길거리에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술에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무작정 술을 먹고 취할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나의 또 다른 무언가가 그것을 늘 막아섰고, 그래서 취할 정도로 실수할 정도로 절대 마시지 않는다. 이후에 감당이 안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고, 후회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도 있다.
그녀가 취한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은 그녀가 매번 말하던 술집을 찾아간 날이었다. 서늘해진 날씨만큼이나 따끈한 국물이 어울리는 그런 술집이었다. 어묵을 파는 그 술집에서 우리는 소주보다는 하이볼을 먹으며 드디어 여기 왔다고 기뻐하는 그녀와 이렇게 좁은 곳에서 술을 먹는다고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묵을 먹고, 가라아케를 먹으며 비워진 배를 채워나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씩 술도 먹었던 것 같고, 그렇게 봄날의 벚꽃을 보며 취한 상태의 그녀를 난 어르고 달래며 길거리를 걸었다.
그녀가 취할 때는 귀여움이 배가 된다. 혀가 짧아져 무작정 귀여운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그 두 눈이 더욱 커지면서 떼를 쓰는 것과 같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길거리에 앉아 더 이상 안 가겠다고, 혹은 잠을 잔다던가 그러진 않는다. 적당히 취한 모습으로 내가 힘들지 않을 정도로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누군가는 취한 모습을 피하기 위해 술을 먹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날 이후로 그녀와 잦은 술자리를 가져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녀가 즐기지 않는 소주부터 그녀가 좋아하는 맥주까지 그녀가 원한다면 같이 먹어주리라 다짐을 다시 한번 한날도 그날로 기억한다.
그녀의 취한 모습을 보며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어 놓고는 그저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을 보았던 것 같다. 봄날의 밤은 추웠는데, 나의 체온으로 그녀의 추위를 날려주겠다 마음먹으며 나의 몸 쪽으로 그녀를 더욱 끌어당기며 잠깐이나마 잠을 자는 그녀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와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그녀가 처음 취했던 것도 있고, 그날 난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어느새 포슬포슬 비가 내리던 그날을 기억하며 그날의 마지막은 그녀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창문을 내려 나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던 그녀의 모습이 술을 많이 마신 어제의 나에게 비쳤다.
취하면 취할수록 술에 취하는 내가 아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녀에게 취하게 된다.
이별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저 그 이후에 불현듯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과 기억에서 한때는 기쁘기도 한때는 미련하기도 그렇게 슬프기도 한 흐린 날의 밤을 난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