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性과 如性
문법 오류에 담긴 우리들의 이상향
여전히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라는 말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하고 있다'라는 진행형으로 말한 이유는 어떤 성별에 대한 '혐오'가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 중에는 그러한 양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를 '남성 혐오' 혹은 '여성 혐오'라는 개념으로 지칭할 만큼 심각한 성 갈등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로잡아야 할 불평등과 부조리의 문제와 '혐오'를 곧바로 일치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여성 혐오'나 '남성 혐오'라는 단어는 어떤 개인으로서 남자•여자를 보편적인 개념으로서 남성•여성으로 치환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내몬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상 언어로서 '혐오'와 학문적 개념으로서 '혐오'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그것을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말이다. 또한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같은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사이라고 하더라도, '혐오'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양상은 분명한 차이를 나타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몇 년 전부터 우리 정부 부처 중 하나인 '여성가족부'가 '女'가 아닌 '如'를 사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여성가족부를 영어로 표기할 때,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의 슬로건은 "평등을 일상으로"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영어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는 '같을 여'자를 사용한다는 주장 자체가, 한자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사실 비아냥에 가까웠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이 게시되기도 했다.
필자는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박사논문의 이론적 틀을 공부했었고, 또한 남성과 여성,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규정에 관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관한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라는 것이 한자라는 점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없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국어사전에서 '주의'는 어떤 것을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 혹은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번역어로서 '여성주의'는 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장이나 방침이면서, 동시에 여성에 대한 이론이나 학설을 말한다(혹은 여성학자들에 의한 이론이나 학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성주의'라는 말이 어느 하나의 성별을 가치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별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성주의를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가 남성주의를 부르짖는다면(물론 남성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성주의 학자도 있다), 대체로 이와 같은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남성은 이미 권력의 다수이므로 소수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다. 남성은 적어도 역사시대에는 언제나 주체로서 살아왔으므로 결코 타자의 위치에서 사유할 수 없다"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 또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 중심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타당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면서, 여성은 지금까지 한 번도 특권적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남성과 여성은 언제나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만 대립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대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여성은 남성에 속박되고 억압되었던 것일까. 이렇게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다투는 것이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까.
화장실에 붙어 있는 지방대학의 총학생회 공지. 이 안내문에는 총여학생회를 '같을 여'자를 쓰는 여학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내가 근무하는 대학교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위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안내문이 현재의 학생회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안내문에 쓰인 글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 테면, '우리 학교에서도 성 불평등 문제에 대한 각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총 여학생회'는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여학생 대상의 성범죄를 예방하고, 여학생이 경험하는 다양한 차별이나 인권침해 등을 개선하기 위한 조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다. 총학생회장을 뽑을 때 총여학생회장도 함께 뽑았고 말이다.
문제는 총학생회에 여학생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여학생회가 별도로 운영된다는 것에 반발하는 남학생들의 반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총학생회가 남학생과 여학생을 포함한 학교 내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인데, 왜 여학생들의 권익을 따로 보장하려고 해야 하느냐는 주장이었다. 이는 결국 여학생들이 약자(소수)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남학생을 역차별하는 것이라는 의견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은 사실 지금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만약 사회적으로 언제나 남성이 강자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편적 남성이 그러한 것이지, 개별적인 남성까지 모두 그러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여러 갈래와 양상으로 관련 이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주체, 사회, 국가 나아가 근대(현대)라는 시대조차도 남성적이라고 규정하고, 여성을 타자, 소수, 피해자로 보고 있다. 이러한 구분 자체가 '남성 vs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바탕에 두고 내세운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해방은 그들이 비판하던 남성적인 성향(이를테면 공격성, 혹은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억압적인 태도)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원리가 남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남성들 중에서도 세계를 이끌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이면서, 피해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여성 중에서도 페미니즘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은 남성적 권력구조의 일원으로서 상당한 권력을 누리는 자들도 있고 말이다. 다시 말하면 보편적 개념으로서 남성과 여성에 포섭되지 못하는 개별 생명체인 남성과 여성이 엄연히 실존하고 있으며, 이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 또한 다양한 맥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무조건 약자이며, 그러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성 vs 여성'이라는 간편한 이분법에 의지하는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성주의라는 단어는 하나의 성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문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논쟁의 소지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페미니즘(여성주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단어 자체가 하나의 성별만을 대변하고 있어서 편파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여성주의가 다양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는 데 있어서, '여성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을 활발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강한 연대가 필요한데, '여성주의'는 개개인의 여성을 하나의 '여성'으로 뭉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는 의견이 있다(이는 형제애, 전우애를 중심으로 남성들이 결집하는 것과 같은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의견들을 두고 여성주의는 '중심-다수-남성'이라는 도식에 맞서기 위해 '주변-소수-여성'이라는 도식을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성주의가 영역을 확대해 나가면서 다양한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주장은 굉장히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같을 여[如]'자를 쓴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잘못된 한자어 속에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던 그들의 욕망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사회적 대우를 받는 사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평등, 정치적인 평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평등은 일부 남성들이 비아냥하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이 모두 똑같이 군대에 가서 '개고생(?)'해야 한다는 식의 동등(평등)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일부 여성들이 과격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모든 남성들은 본래 잠재적 범죄자이거나 파렴치한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이 심각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두 성별 가운데 하나의 성만을 옹호하는 '여성주의'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언어를 포함한 모든 기호는 본래 차이를 드러내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단어는 오직 그 개념에 포함되는 존재들만을 지칭할 뿐인 것이다.
필자는 여성주의가 정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과 철학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모든 방향에 대한 생각을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첫째 여성주의의 노선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고, 둘째 그것은 현재 왕성한 성장의 단계에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필자가 국문학을 주전공으로 한 인문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문학적으로' 사유하고 싶고, 나아가 새로운 이름의 여성주의를 '창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어서 느슨한 사유일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들이 원하는 혹은 추구해야 할 욕망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그릇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아마도 그것은 또다시 '형식적 인간관계'로써 가능할 것이다. 또한 '형식적 인간관계'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