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_여, 나 혹은 나머지 2

나답게 산다는 착각, '성과주체'의 비애

by 정선생

'나답게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다른 사람의 욕망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당한 삶'을 위한 근본적인 조건처럼 보인다. 나답게 산다의 왜곡된 형태가 나 혼자 산다는 선언인지 모른다.


"나답게 산다"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다. 그 이유는 애초에 '나'라고 하는 것은 정신의 산물이고, 그러므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체가 우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체를 바꾸는 행위(성형)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것 역시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나'를 규정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답게 산다'는 말과 '자기만족'이라는 말은 밀접한 관계를 지닐 것이다. "나답다"라는 말은 나의 속성을 온전히 보존하는 일과 관련이 되는데, 나의 속성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족은 정신의 작용이며, 그러므로 '나답다'는 '내가 만족하는 나의 모습대로'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이른바 '거울'이다.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면서 한참을 놀 수 있는 이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좋아하며, 또 사랑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거울을 볼 때, 마냥 재미있어하지도 않고 자신의 모습을 무조건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른들은 거울 이외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써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어른들에게 훈육을 당하게 된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점차 늘어나고, 칭찬과 꾸지람이 자신의 행동마다 시시각각 제공된다. 또래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지 뛰어나지 않은지를 자각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도 마냥 행복해하거나 즐거워할 수 없다. 나의 신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의 정신에 가득 들어찬 나의 모습은 오직 꾸지람 듣기와 패배를 반복하는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다.


요컨대 어린아이의 경우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오직 거울에 비친 모습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그저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거울을 보지 않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거울을 보지 않는 이유는 굳이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자신에 대해 말해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거울을 지나치게 많이 보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는 사람들, 열심히 운동해서 가꾼 몸매를 거울에 비춰보는 사람들, 각종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으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은 '나를 가꾸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나답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주 어린 시절에 바라보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잊어버린 지 오래이고, 오직 다른 사람들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들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열심히 자신을 가꾸고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병철의 지적처럼,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제의 나를 극복하려 애쓰는 '성과주체'일 뿐이며, '성과주체'의 삶은 결코 완수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하는 삶이다(『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참조). 만약 그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밀려드는 '허무'가 있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성과주체'는 밀려드는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성취감을 맛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성과주체'에게는 나답게 산다는 말은 불가능한 것이며, 끊임없이 나로부터 탈주하려고 할 때에만 존재가치와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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