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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Apr 29. 2024

용서 못하는 사회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불편한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고,

실망시키고, 또 상처를 준다.


삶이 치열해질수록 주변의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또 넘어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받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학교에서도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 용서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잘못한 학생을 선생님이 마음대로 용서해 줄 수도 없다.

교칙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용서는 불공정, 불공평으로 오해되거나 평가되어 학부모 민원으로 이어진다.

규칙들은 끝없이 늘어나고,

용서는 점점 필요 없는 단어가 되어간다.



'용서'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다

<밀양>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라는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자식을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을 엄마는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교도소로 범인을 찾아간 엄마는 경악한다.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범인의 얼굴은 평안했다.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장기기증까지 결정한 상태다.


신의 용서는 인간의 용서를 앞설 수 있는가?

아이의 엄마는 분노한다.

소설에서는 엄마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는 '전도연'이 숨 막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용서를 강조한다.


용서는 인간행위의

불가피한 결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류와 잘못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행위라 말한다.


사람은 용서를 통하여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만들 수 있다

용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용서'는 용서받는 자와 용서하는 자 모두를 자유롭게 한다.


또 '보복'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예측가능하지만, 

'용서'는 예견될 수 없는 '인간적'인 행위라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외침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불공정한 사회 속에 살면서,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흉악 범죄는 매일 발생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은 나날이 넘쳐난다.


용서 없는 사회 속에서 실수투성이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매일매일 용서와 화해가 넘쳐나면 좋겠다.

그것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으면 좋겠다.


용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단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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