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영어 때문에 속이 터진다고 하소연하는 지인을 위로하면서 하게 되는 말이다. 한국인들이 해외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의 원인은 대부분 언어장벽이 그 주된 원인이다. 궁금해도 참고, 답답해도 제대로 질문도 못 꺼내고, 때로는 불이익을 받아도 항의 한 번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언어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성인이라면 영어를 10년은 넘게 배웠음직한데 왜 우리에게는 영어가 여전히 큰 산일까.
영어 과외를 받는다고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프랑스인 친구는 벌써 국제학교 교장선생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며 "난 대체 뭘 한 걸까" 자괴감이 든다는 이야기. "넌 영어를 그렇게 못해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는 핀잔에 자존심 너무 상한다는 푸념. "난 이제 나이가 들어서 도저히 외워지지 않아 이젠 영어가 글렀다." 와 같은 한숨 섞인 말 속에는 "영어가 너무 어렵다"와 "그래도 영어를 잘 하고 싶다"가 하루 수십 번씩 서로를 저울질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FSI(Foreign Service Instutute: 외교 관련 고위공무원을 훈련시키는 미국 정부기관)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필요한 학습시간*을 측정해서 다양한 외국어를 난이도에 따라 4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 등은 미국인이 배우기 비교적 수월한 언어인 Level 1, 즉 약 600 시간의 학습시간을 요한다. Level 1.5는 약 750-900시간의 학습이 필요한 수준으로 독일어, 인도네시아어 등이 이에 해당된다. Level 2를 보면 체코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이 포함되며 1,100시간의 집중 학습이 필요하다.
미국인이 느끼는 한국어의 난이도는 어떠할까? 한국어는 영어와 가장 거리가 먼 범주인 Level 3에 속해있으며 Level 2와도 학습시간에서 무려 2배 차이가 나는 2,200시간의 학습을 요한다. 영어를 쓰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어떤 외국어보다도 극단적으로 어려운 언어로 꼽힌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부담을 느끼는 만큼 우리에게도 영어가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말과 영어는 세계의 여러 언어를 서로 유사한 순으로 나란히 늘어놓았을 때 서로 양 극단에 위치한 언어이다.
영어를 어렵게 느끼는 우리는 지극히 정상이다. 영어를 쓰는 그들에게도 우리말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영어는 아마도 공통점이 가장 적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양극단에 있는 두 언어 사이의 차이점을 보면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학습시간:
주 25시간의 수업과 매일 3-4시간 동안 혼자 공부하는 집중 훈련 과정으로 측정한 투여 시간
아담은 써니를 좋아해.
써니를 아담은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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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단어의 배열 순서를 바꾸면 의미가 바뀌는 반면 우리말은 뜻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말과 영어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보았을 때, 영어는 독립어에 가까운 반면 우리말은 교착어에 속한다. 우리말은 조사를 붙여서 문장 의미를 만들지만, 영어는 단어를 배열하는 순서로 그 뜻이 결정된다.
영어는 우리말에 비해서 문장을 내에서 단어를 두는 순서가 지극히 중요한 언어이다. 영어 초심자 분들이 처음 입을 떼는 단계에서 가장 어려워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단어가 앞뒤 없이 막 튀어나오는 바람에 원래 의도했던 대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은 아직 우리말 식으로 영어를 하는 단계인 것이다. 단어를 정해진 순서대로 놓아야 하는 영어라는 언어의 '틀' 을 훈련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토록 심하게 다른 언어를 성인이 다 되어서 배운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분명히 가능하다. 핀란드인이 이를 증명한다.
놀랍게도 서양의 언어인 핀란드어는 우리말과 같은 교착어에 속한다. 핀란드어는 대부분의 유럽의 언어들이 속해 있는 인도유럽어가 아닌 우랄어의 한 종류이다. 그러므로 핀란드어 역시 우리말과 같이 영어와 꽤 거리가 먼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FSI 의 자료를 보면 핀란드어는 미국인들이 한국어 다음으로 배우기 어려운 언어 범주인 Level 2 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범주의 다른 언어보다도 난도가 높은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 핀란드어와 영어 간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핀란드인의 약 70%는 영어를 듣고 말할 수 있다. 모국어와 영어 간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올바른 방향의 교육과 훈련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이 증명되는 셈이다.
Solution: 구조를 귀와 입에 '붙이기'
단어를 배열하는 틀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영어는 어순이 극도로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문법 구조를 '귀와 입에 붙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가독성 좋은 글을 위해 이번 편에서는 간략하게만 소개드립니다.)
구조가 언어의 뼈대라면 어휘는 살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어 암기 없이는 어떠한 언어도 말할 수 없다. 영어 단어의 30%는 라틴어에서, 30%는 불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뿌리가 라틴어인 공통분모가 있는 여타 유럽의 언어가 모국어인 이들에게는 이미 기본적인 영어단어가 자동으로 장착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다량의 어휘 공부가 필수인 우리가 짚어봐야 할 부분은 어휘를 익히는 방법에 있다. 아래의 예를 보자.
[예 1] eager = 열렬한
Q. 오늘 나의 일과를 설명하면서 eager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예 2] 커피숍에서 주문을 하는 상황입니다. I want Americano.
Q. 위의 내용 대신 써야 할 문장은 무엇일까요.
[예 1] 단어는 열심히 외웠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막막해지는 느낌. 분명히 열심히 암기해서 의미도 아는 것 같은데 문장에 넣으려니 망설여진다.
[예 2]이게 무슨 문제지? 이렇게 쓰면 왜 안되지?
(이에 대한 답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Solution: 통째로 삼키기
문장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단편적인 단어 암기. 맥락에 맞지 않는 표현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어휘 공부는 낱개의 낱말이 아닌 단어가 사용된 통문장과 상황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가독성 좋은 글을 위해 이번 편에서는 간략하게만 소개드립니다.)
자막을 보면 허무할 정도로 쉬운 말도 왜 귀로만 들으면 세상 처음 듣는 의미 없는 소리가 돼버리는 걸까. 한국어와 영어의 음성학적인 차이 때문이다. 한국어는 음절 단위로 발성을 하는 반면 영어는 강세 위주로 소리를 내고 언어를 인식한다. 우리말은 모든 소리를 거의 같은 강세로 말하지만 영어에서는 강세가 들어가는 모음 이외의 소리는 현격하게 약화시켜 말한다. 심지어 영어는 우리말에는 없는 자음만으로 된 소리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내 귀에 걸리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 퍼포먼스 미국인: 다시 한번 말해 줄래? 뭐라고?
한국인 (왜 이걸 못 알아듣지? 더 또박또박 말해줘야지) 퍼. 포. 먼. 스.
미국인: 모르겠어 ㅠ ㅠ 한국인: 안 되겠다. 적어줄게.
미국인: 아 per FOR mace!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예에서와 같이 영어는 강세도 의미 전달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만약 performance에서 엉뚱한 부분에 강세를 두거나 아예 강세 없이 같은 높낮이로 말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performance라는 단어로 인식하지 않는다.
Solution: 글로 배우는 연애와 영어는 이제 그만
영어라는 낯선 소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영어 소리에 노출되지 않은 채로 영어가 늘기를 바라는 것은 글을 읽고 연애를 다 안다고 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듯, 영어도 실제로 들으며 잡음이 아닌 의미 있는 언어로 인식시키는 훈련 과정에 필요하다.
영어는 글이 아닌 소리로 먼저 배워야 마땅하다. 특히 음성학적으로 영어와 판이하게 다른 한국어가 모국어인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가독성 좋은 글을 위해 이번 편에서는 간략하게만 소개드립니다.)
영어와 우리말 간의 언어상의 차이는 노력의 방향이 제대로 조준만 된다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올바른 방법과 일정량의 학습량이 충족이 되면 시간이 해결해 줄 부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근본적인 어려움은 이들 이외 다른 데에 있다.
더 이상 끌려가지 않는 대한민국의 영어독립을 꿈꾸며 글을 연재합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의 영어를 배우고 해외체험한 경험과각종 이론을 겸비한 내용을 통해 "알면 세월을 아끼는" 한국인의 영어고민을 풀어갑니다. 당신의 영어독립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참고문헌:
G.Wyner(2014). Fluent Forever
소소한 질좋은 습관, 소질의 힘을 믿습니다
매일 영어를 말하면 만나는 설레는 일, 위스픽잉글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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