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 구성을 하는 일은 디자인 컨셉을 '만들어 나아가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그 뒤에 설치되는 도기와 수전들 그리고 붙박이장에 이르는 소품들을 구성하는 일은 디자인 컨셉에 '어울리는 것들을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디자인과 심미성 그리고 내구성과 기능성은 물론이고 적절한 금액과 추후 A/S까지 고려하며, 지금 꾸며나가는 이 공간에 어떤 것이 어울릴지 첨예하고 예민하게, 수만 가지의 물건 중에 그 날카로운 감을 세워서 에센스를 듬뿍 머금은 그 하나를 선택해 내야 한다.
그리고 담담히 고백컨데, 나는 사실 그쪽으로 재능이 별로 없다.
얼마나 재능이 없냐면,
내 스마트폰은 블랙베리다.
다행히도 나는 스스로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보통은 그 일에 대해서는 건축주를 많이 의지한다. 건축주에게 찾아오라고 시킨다는 건 아니고, 건축주의 취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물건을 보러 다니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려한다. 이번 경우에 그 건축주는 바로 현명하고 아름답고 센스 넘치는 디자이너, 나의 재정부 장관님 되시겠다.
이번 글에서는 조명, 도기, 수전, 붙박이장에 대해서 다루려 하는데, 사실 시공 순서는 크게 상관이 없다. 현장여건만 가능하다면 순서가 겹쳐도 크게 무리는 없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타일 깔기 전에 도기를 설치하는 건 안되지만, 도기와 붙박이장 중 그 무엇이라도 먼저 설치한다고 해서 안될 일은 정말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도기를 제일 먼저 설치해주는 게 도덕적으로도 배변적으로도 옳다.)
아, 수전과 도기는 순서가 있다. 도기가 먼저다.
조명은 형태로 나눈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일단 노출형에는 흔히들 알고 있는 방등부터 샹들리에 펜던트 스폿라이트 스탠드 등등 벽체 및 천장의 면으로부터 벗어 나와 설치되는 등을 일컫는다. 그리고 매입형에는 각종 매입 등을 비롯해서 간접등 설치형 바리솔 등 면의 안쪽에 설치되어 빛을 발하는 등을 일컫는다.
개인적인 취향에 달린 문제겠지만, 나는 거실과 화장실과 같은 공용 공간에는 매입을 주로 쓰고 부엌이나 방 등 비 공용 공간에 대해서는 조명에 대해 조금 힘을 주려한다. 공용공간에 특정 취향을 부여하면 편향적인 느낌이 들고, 사적인 공간에는 취향에 어울리는 조명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마찬가지로 거실과 화장실에는 매입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부엌과 방등에 대해서는 아내와 깊이 상의 (라고 쓰고 일임이라고 읽는다) 하였다.
셀프 인테리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팁을 하나 드리자면, 조명은 사실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그것을 위한 준비물은 단 하나, 이미지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조명에 가까운 이미지를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하나 찾아 을지로의 아무 조명가게나 들어가서 "이거 주세요!"를 외치면 직원분이 가장 근접한 제품을 소개해줄 것이다. 그리고 소개받은 제품의 색이나 크기나 전구의 색상 중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면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서 가능한지 확인을 해 줄 것이고, 여러분은 80% 이상의 확률로 두 손 가득 집에 돌아올 수 있다. 물론 항상 그렇듯, 가격에서 합의 보는 건 힘들다.
우리 방에 설치된 달덩이도 목 길이를 제단해 주셨고 부엌 펜던트 등도 조명 색과 나무색 그리고 크기를 다 커스터마이징 해주신 고마운 사장님이 계시다. 하하.
조명을 손에 쥐었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친절한 조명 업체에서 구매를 했다면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체크해야 할 것이 '안정기'라는 녀석이다. 쉽게 말하면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어 조명에 전원을 공급해 주는 녀석인데, LED조명에는 무조건적으로 이놈이 필요하다. (교류에 그냥 LED를 물리면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두꺼비집이 내려간다.)
안정기를 볼 때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봐야 할 것이 용량이다. 절대 부족하면 안 된다. 터지거나 혹은 터지지 않더라도 금방 고장나버리거나 조명이 충분한 밝기를 내지 못하게 된다. 가끔 조명 자체에 안정기가 내장된 착한 아이들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도기와 수전을 고르는 일은, 사실 설비공사를 하기 전에 끝냈어야 한다. 만약 설비공사도 마감공사도 다 끝난 뒤에 도기와 수전을 고르고 있다면, 선택의 폭은 개미 더듬이의 땀구멍만큼 작아져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도기와 수전에 접속되는 수도배관과 하수 오수배관의 위치가 각 모델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관의 위치를 잡는 일은 공사의 극 초반인 철거공사 직후에 이루어진다.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분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니까 절대 잊지 말자. 공사를 시작하기 전, 가능하면 모든 설계를 끝내 놓거나 적어도 도기와 수전만이라도 골라놓자.
화장실 구성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세면대와 연결된 젠다이 부분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좁은 화장실 공간에 수납에 대한 이슈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방법으로 고안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만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상부에 올라갈 세면대와 연결될 배관의 위치에 맞게 타공 위치를 미리 잡아주어야 했고, 젠다이를 만들기 위한 하지 (골격) 작업 또한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편에서 언급했지만, 자재의 무게는 항상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하지는 무엇이든 견딜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 철제 파이프를 사용하여 벽에는 앙카를 이용해 고정하고 고정을 못하는 쪽은 작은 트러스 구조를 응용하여 어떻게든 견디게끔 설계하였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어떻게든 해결하여 내가 매달리고 올라가도 미동 없을 정도의 구조를 만들어 냈고, 그 위에 아름다운 인조대리석과 더 아름다운 세면대가 안착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붙박이장과 싱크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붙박이장과 싱크대 도어를 이루는 자재는 흔히들 알고 있는 하이그로시부터 LPM, 도장, PET, 강화유리 등등 까지 너무 많은 자재가 있기 때문에, '도비의 친절하고 알기 쉬운 건축대학교' 코너가 생기는 날 다시 한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 신혼집의 가장 포인트였던, 싱크대 상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조대리석, 스테인리스, 우드, 그리고 강화유리 이렇게 네 가지가 내가 지금까지 실물로 봐온 싱크대 상판에 쓰이는 자재의 종류이다. (물론 세상에는 더 많은 싱크대가 있을 수 있다. 자연바위를 깎아서 싱크대로 쓰는 것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간략하게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자면, 인조대리석은 관리하기도 쉽고 색상의 다양성도 크며 견고함도 뛰어나다. 아마 흔하게 쓰인다는 게 인조대리석의 유일한 단점이 아닐까 한다.
스테인리스는 저가형 기성 싱크대에서 많이 쓰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마치 대형 식당의 조리실처럼 멋을 낸 스테인리스형 제작 상판도 많이 한다. 하지만 상판끼리 연결 및 접합을 해야 하는 부위에 용접이나 매지가 들어갈 경우 그 마감에 대해 극도의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우드, 원목 상판은 그 특유의 따듯한 색감과 부드러운 물성에 끌려 맞이들 찾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기름칠을 해주며 관리를 해야 한다는 약간 (?) 의 수고스러움이 있다.
마지막 강화유리 상판은 지금까지 보아온 상판 중에 가장 고급스럽고 깊은 색감과 함께 망치로 내리쳐도 흠집 하나 안 생기는 견고함을 보여주었지만, 그 가격대가 억 소리 나는 가격대이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건전한 가격 (?) 이었던 우리 집 싱크대의 원목 상판 제작 중에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기존의 다른 프로젝트들에서 거래해오던 붙박이 가구 사장님께 잘 부탁드린다며 사장님께 내 컨셉과 도면과 색감과 자재를 정리하여 전달하였는데, 하필 그 다음 날, 사장님이 과로로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업정신이 투철하셨던 사장님은 모든 일을 직원에게 인수인계하셨고, 그 직원분은 인계를 받아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우리 집 원목 상판에 대한 색상이 잘못 전달되어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밝은 색을 뗬어야 할 나무가 고동색을 입은 채로 우리 집에 설치되어 버린 것이다.
며칠 뒤, 제발 집에서 쉬시고 직원분을 보내달라는 내 연락을 무시한 채 사장님은 퇴원하는 날 바로 우리 집으로 와주셨고, (너무나 죄송스럽고 감사했던..) 며칠 안 걸려서 바로 사장님께서 직접 상판을 교체해주셨다. 항상 감사한 분이다.
그리고 대망의 준공청소를 끝내고 나는 바로 이 집에 살기 시작하였다.
냉장고도 티비도 침대도 없는 이곳에 왜 힘들게 먼저 들어와 살으려고 했냐 묻는다면, 절대 결혼 전 마지막 자유를 누리려고 그런 게 아니다. 절대. 진짜. 트루. 혼또. 레알
결혼 전까지 침대를 만들 것이다.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