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하는 남자와 디자인을 하는 여자의 신혼 첫 보금자리 꾸미기
페인트를 칠하고 타일을 깔고, 거실 매입등을 달았다. 목공사 때문에 아무래도 거실 천정이 조금은 낮아졌으니 무조건 심플하게, 매입으로 하자! 라고 의견을 모았고 거실 매입등은 도비가 알아서 척척 주문해주어 빠르게 설치를 완료했다. 거실등까지 설치하고 나니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내 머릿속의 그림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영상에서도 보여지듯이 공사의 70-80%가 완료된 후 엄청난 공사 잔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각 공사의 담당자분들이 공사는 물론, 남는 재료나 쓰레기들을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버려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일당을 받고 일하시는 분들이기에 자신이 맡은 작업량 이상의 일을 해주시진 않는다고 했다. 어려운 공사의 세계..
청소업체에 집 청소를 맡기기 전, 큰 쓰레기들은 다 버려야 했기에 주말 하루를 날 잡아 그 잔재들을 다 처리하기로 했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나 했더니 공사 폐기물을 수거하시는 분께 직접 수거를 요청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수거 담당자분이 오시기 전까지 옮겨야 했기에 아무 말도 안 하고 거의 2시간을 풀로 써서 모든 쓰레기들을 1층으로 옮겼던 것 같다. 한 겨울날 땀날 정도로 육체노동을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청소업체에 청소를 맡기기 전, 남아있는 자잘한 공사들도 완료했다. 일단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이 붙박이. 큰 평수의 집이 아니기도 했고 옷장이나 서랍장이 집의 한 구석에 존재감 넘치게 자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거실이든 화장실이든 붙박이 안에 최대한 수납하기로 했다.
도비가 쓴 공사일지 1편에 나온 현관 옆 틈새 공간도 붙박이를 짜서 쓰레기통 및 분리수거함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남편이 쓰는 공사일지에서 더 자세히..)
그리고 집 공사를 하며 배치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곳이 화장실. 기존의 배치를 틀어가며 손이 많이 갔었는데 결과는 성공. 손을 씻거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는 행위, 그리고 바로 왼쪽 벽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고 넣는 행위가 일렬로 이어져서 동선이 꼬이지도 않고 물을 사용하는 부분은 조금 더 낮게 층을 두니 어느 정도 공간 분리가 가능했다. 원래는 샤워부스 쪽 공간에 벽을 쌓거나 문을 두려고 했었는데 몇 번 사용해보니 굳이 물리적인 공간 분리를 하지 않아도 물이 많이 튀지 않아서 기존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수전과 수전을 올려놓을 대리석, 변기 등을 모두 직접 골랐고 이 모든 것들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도비가 후보 리스트를 보여주고 나는 그중에서 선택하고 (완전히 건축주 모드) . 만약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면 직접 후보를 찾아보기도 하는 식으로 큰 공사가 끝났음에도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계속해서 선택을 미뤄왔던 것 중에 하나가 부엌등과 침실등이었다. 찾아놓은 레퍼런스는 많았는데 조금 더 '이거다!' 싶은 것이 없을까? 하고 끊임없이 핀터레스트를 뒤졌고, 결혼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가끔 핫한 카페나 장소들을 방문하게 되면 그곳의 조명을 찍어오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일본의 건축과 인테리어 스타일을 좋아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감성과 디자인 스타일은 부정할 수 없이 꾸준히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도 그런 일본 인테리어를 우리 집 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조명과 가구들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잔잔하게 잘 어울렸으면 했고 너무 스타일리시하여서 금방 질려버릴 모양은 하고 싶지 않았다.
로망이었던 나무 상판 싱크대와 상부장이 없는 오픈형 선반으로 주방을 완성하고 나니 주방 자체로도 너무 마음에 들어 조명을 설치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는데, 주방 조명마저 없으면 너무 밋밋해진다는 도비의 의견을 수렴하여 거의 주방과 일체형처럼 보이는 조명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인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의 조명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해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침실 조명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하얗기도 하고 심플해서 딱딱해 보이기도 하는 집에 하나 정도는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밤에 침실에 누워서 조명을 켜고 있으면 창으로 들어오는 밤의 어두움 속 보름달이 뜬 것 같지 않을까?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딱 동그란 구 형태의 조명을 요청했더랬다.
설치된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귀여웠고, 꽤 커다란 창이 있는 우리 집 침실과도 잘 어울렸다.
자잘한 공사들이 거진 다 완료될 즈음, 마침 도비가 하루 휴가를 낼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여기저길 다니며 당장 필요한 생필품 및 매트리스를 구매해왔다. 그리고 도비는 이제 일주일에 며칠은 신혼집에서 출퇴근하며 집에서 손볼 것들은 손 보고 남은 일들을 처리하겠노라 (홀로 집에서 자유를 누리겠노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