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9시 45분에 온다는 버스는 깜깜무소식이다. 아~ 러시아도 인디안타임이 존재하는 건가. 영하 23도의 추위에 잠시만 서있어도 동장군이 될 터였다.그래도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이기에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 모두 미소를 품은 채 추위와 싸우는 건 동동 구르는 발뿐이었다.
한 겨울에 알혼섬으로 가는 이들의 90% 이상이 중국인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도 이유일 테고, 서양인들이 영하 20~30도의 추위에 익숙치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버스는 11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낡은 외관의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는 버스는 히터 기능이 없었다. 창문 밖 풍경을 보겠다고 창가자리에 앉은 것을 꽤나 후회했다. 이후 버스는 몇몇 장소에 들러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사람과 짐으로 통로까지 가득 채운 후 알혼섬으로 출발했다.
2시간 여를 달려 평야 한복판에 덩그러니 지어진 휴게소에 들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메뉴를 살피니 라이스, 누들, 빵, 소고기, 소시지, 만두 그리고 따뜻한 스프가 있었다. 채소나 과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러시아인의 주식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으로 구성됐다. 강추위와 맞서기 위해서 고열량의 에너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선 그 나라 음식과의 궁합도 중요하다. 인도여행처럼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는 혹여나 살이라도 빠지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염려는 이번 여행에서도 말끔히 사라졌다. 평소 탄수화물 섭취량이 적은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탄수화물을 찾고 있었다.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운 후 버스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는 책을 많이 읽겠노라 호기롭게 3권을 챙겨왔다. 빼곡이 쌓여진 짐들을 풀어헤쳐 그 중 한권을 꺼내들었다. 계속해서 덜컹이는 버스 덕에 몇 페이지 넘기지도 못하고 도로 넣을 수도 없어 책은 가는 내 불편한 짐이 되고 말았다. 욕심이 또 다시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광활한 설원에서 와이파이는 커녕 전화도 잘 터지지 않았다. 남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소매 깃으로 창문에 낀 성에를 열심히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