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알혼섬을 떠나는 날.
이틀동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나탈리아에게 우리나라 술과 커피를 선물했다. 일 년 중 하루만 술을 마신다는 그녀는 생일에 마시겠다며 기쁜 마음을 표했다. 여행을 다니며 생긴 팁이라면 팁일까. 여행 중 만나는 고마운 사람, 특별한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것이다. 가격이 중요하진 않다. 그것에는 정도를 매길 수 없는 진심이 담겼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인기 있는 선물은 코리안 위스키, 소주다. 초보여행자일 때 마시려고 챙겨 다니던 소주가 이제는 타지에서 타인에게 건네는 감동선물이 되었다. 소주 여러 병을 담은 배낭은 여전히 무겁고 짊어진 등짝은 수고롭지만, 가슴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든든해진다.
알혼섬에서 6시간을 달려 이르쿠츠크 시내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 부근에 있는 호스텔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3일 쯤이야 안 씻고도 너끈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혼섬에서 자원을 보존하려는 이들을 보며 나 역시 물을 아껴쓰겠다 결심했었다. 그렇다. 나는 망각의 동물이었다. 하루 만에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수에 몸을 내던졌다.
씻고 나와 거울을 보며 환골탈태란 말을 떠올렸다. 한결 사람다워진 모습에 내심 만족하며 근처 마켓으로 향했다. 성공적인 알혼섬 투어를 기념하고,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을 기념하고자 보드카 한 병을 샀다. 라면 하나를 잽싸게 끓여 볶은 김치와 보드카를 곁들이니 이만한 만찬이 따로 없다.
장석주 시인은 술을 ‘물의 불’이라 하였다. 나를 삼길 정도로만 아니 마시면 이 물의 불이 지피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가슴도 지피어 긴장을 완화시키고 기분 좋은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술에 취해 기분에 취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절대 하지 못했던 그 어려운 말을 기분 좋게 외치고 통화를 마쳤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