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불

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by 유림


알혼섬을 떠나는 날.

이틀동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나탈리아에게 우리나라 술과 커피를 선물했다. 일 년 중 하루만 술을 마신다는 그녀는 생일에 마시겠다며 기쁜 마음을 표했다. 여행을 다니며 생긴 팁이라면 팁일까. 여행 중 만나는 고마운 사람, 특별한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것이다. 가격이 중요하진 않다. 그것에는 정도를 매길 수 없는 진심이 담겼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인기 있는 선물은 코리안 위스키, 소주다. 초보여행자일 때 마시려고 챙겨 다니던 소주가 이제는 타지에서 타인에게 건네는 감동선물이 되었다. 소주 여러 병을 담은 배낭은 여전히 무겁고 짊어진 등짝은 수고롭지만, 가슴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든든해진다.


20190201_135409.jpg 그 겨울 러시아



알혼섬에서 6시간을 달려 이르쿠츠크 시내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 부근에 있는 호스텔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3일 쯤이야 안 씻고도 너끈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혼섬에서 자원을 보존하려는 이들을 보며 나 역시 물을 아껴쓰겠다 결심했었다. 그렇다. 나는 망각의 동물이었다. 하루 만에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수에 몸을 내던졌다.



20190201_164247.jpg 이르쿠츠크 호스텔
20190201_164307.jpg 이르쿠츠크 호스텔



씻고 나와 거울을 보며 환골탈태란 말을 떠올렸다. 한결 사람다워진 모습에 내심 만족하며 근처 마켓으로 향했다. 성공적인 알혼섬 투어를 기념하고,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을 기념하고자 보드카 한 병을 샀다. 라면 하나를 잽싸게 끓여 볶은 김치와 보드카를 곁들이니 이만한 만찬이 따로 없다.


20190201_181636.jpg 러시아에서 만찬



장석주 시인은 술을 ‘물의 불’이라 하였다. 나를 삼길 정도로만 아니 마시면 이 물의 불이 지피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가슴도 지피어 긴장을 완화시키고 기분 좋은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술에 취해 기분에 취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절대 하지 못했던 그 어려운 말을 기분 좋게 외치고 통화를 마쳤다. “사랑해”



0K6A0297.JPG 러시아 보드카




사진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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