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채소가 보약보다 건강에 좋다지만 일인 가구는 오늘도 장을 보며 채소는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건강한 식단을 다짐하며 양파, 파, 배추 등을 매번 사다 놓지만 한 번에 다 먹지 못해 남기면 어느새 시들시들해져서 반은 버리고 만다. 아까운 식재료를 괜히 사서 결국엔 버리고 마니 이제 살 때부터 마음이 무겁다. 남은 채소가 냉장고에 보관된 지 이틀이 지나서부터는 불안 초조하다. 저거 먹지 않으면 또 버리는데 저걸 어떡하나...
오늘도 냉장고를 열었더니 알배기 배추 반통이 눈에 띈다. 지난주에 만두전골 해 먹고 남은 채로 일주일이나 지났다. 최대한 시드는 시간을 늦춰보려고 신문지로 꽁꽁 싸맸지만 일주일 지난 알배기 잎은 축축 늘어져서 쌈이나 조리용으로는 못 먹겠다. 엄동설한에 올해 특히 금값이라는 배추를 이렇게 버려야 하나 마음이 아프다. 신문지로 둘둘 말아놓은 파와 카레 해 먹고 남은 양파도.
다듬어서 냉동실에 넣을 시기도 이미 지나버렸다.
이럴 거면 미리 냉동실에 넣어둘걸.
그런데 얼마 전 예능프로에서 봤던 무수분 수육이 떠올랐다. 고급 한식집 사장님이 출연하셔서 우리집 수육은 물을 넣지 않고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만으로 고기를 익힌다던 말씀이 떠올랐다. 수육이란 것을 한 번도 요리해 본 적은 없지만 냉장고에 남은 채소들 처리할 겸 한 번 도전해 보았다.
수육용 통삼겹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겉면에 된장을 펴 발라준다. 그 상태로 20분 정도 두면 좋다는데.. 나는 딱 채소가 준비될 동안만 재워뒀다. 아마 10분 정도였을 것 같은데 그 정도도 나쁘진 않은 듯. 그리고 양파 하나를 가로로 썰어서 한 개 전부 냄비에 깔아준다.
양파 위에 알배추를 최대한 깔아준다. 배추가 없으면 양파나 대파 등 수분이 많은 다른 채소를 깔아주면 된다. 냉장고 야채칸 정리가 목적이니 각자의 냉장고 사정에 맞게.
야채를 충분히 깔아준 후 수육용 고기를 얹고 통마늘 한 줌을 넣어준다.
그리고 고기가 완전히 가릴 정도로 남은 배추와 대파를 이불처럼 덮어준다. 물은 한 방울도 넣을 필요 없다. 이 상태로 냄비 뚜껑을 닫고 중불로 50분 푹 끓여준다. 재료량과 화력 차이가 있으니 40분 정도에서 고기를 덮은 야채를 걷어내고 고기 상태를 한번 확인하고 남은 조리 시간을 결정하면 된다.
정말 물 한 방울 안 넣었는데 45분쯤 끓이니 물이 흥건하다. 이 상태에서 십분 정도만 센 불로 더 끓인 후 꺼냈더니 속까지 잘 익었다.
잡내 하나 없이 촉촉 쫀득한 수육이 완성되었다. 내가 했는데 신기하게 맛있다. 하지만 물로 삶은 수육에 비해 훨씬 맛있다거나 식감이 좋은 지는 모르겠다. 절반은 무수분, 절반은 수분으로 조리해서 비교하며 먹어보면 다르긴 하겠지만 무수분만 해놓고 보니 잘 모르겠다. 그러니 굳이 무수분 수육을 하려고 없는 야채를 사서 조리하시라 권하지는 못하겠다. 특히 엄마 앞에서 귀하디 귀한 야채를 이렇게 삶아 버리면 바로 등짝 스매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