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불고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by 푸른국화

2021년 올해 설은 부모님이 드디어 결단을 내리셨다. 이제 명절차례는 그만 지내는 것으로. 몇 년 전부터 아빠가 먼저 제안하셨지만 엄마는 어차피 가족 먹일 음식 하는 김에 조금 더 하면 되는 건데 다른 집 다하는 걸 어떻게 그만두냐며 진득히 명절차례 준비를 이어오셨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우리나라 차례 준비는 어차피 먹을 음식 조금 더 하는 간단한 게 아니라는 것.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들은 딱히 요즘 사람들이 좋아서 찾아먹는 음식도 아닌데 어느 것 하나 적당히 장만할 수 있는 게 없다. 오죽하면 명절 쇤 후 이혼 건수가 급증한다고 할까. 굳이 사는 사람들이 힘들면서까지 지켜야 할 전통이란 게 있을까.


아무튼 나 홀로 차례상을 지지하던 엄마도 올해 설부터는 차례상 졸업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그간 고생 많았던 우리 엄마 환갑이 넘어서야 차례상 졸업 기념으로 호캉스시켜 드리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는 4인 가족이라, 방역수칙 위반은 아니었다.


엄마가 차례음식에서 해방됐으니 이제 나도 해방이다. 올해는 차례음식 장만을 않을 테니 연휴가 시작되어도 한참 늑장을 부리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저녁때가 다되어 부모님 댁에 도착했더니 전, 나물, 생선, 수육까지 한 상이었다. 차례도 안 지낸다면서 이게 다 뭐냐니까 우리 가족들 먹을 거라신다. 이럴거면 내가 늑장 안 부리고 빨리 왔지. 엄마 왜 이리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핀잔을 주고 말았다.


다음 날 동생이 예약해둔 호텔로 향하는데 엄마는 양손 가득 짐을 챙긴다. 잡채며 불고기용 소고기, 어제 장만해둔 전이랑 한과를 가득가득 담았다. 호텔은 조리도 안되는데 이런 건 왜 챙기냐니까 가는 길에 우리 집 들려서 놓고 가겠다고 하신다. 이걸 누가 다 먹냐고 또 승질머리를 부리는데, 우리가 다 먹고 갈 테니 걱정 말고 그냥 가자시는 아빠의 말 끝에, 엄마는 오지탐험이라도 가나보다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고 말았다.


그렇게 호텔로 가다 말고 우리 집에 들러서 엄마가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 차려놓고 밥을 먹으려는데 엄마는 그제야 피곤하다며 식사도 않고 내 침대에 누워 주무신다. 맛있는 거 사드리려 했는데 그것도 실패, 체크인 시간까지 바다 구경이나 오랜만에 시켜드리려 했는데 그것도 실패, 엄마는 어제 하루 종일 힘들게 음식 해서 여기까지 들고 오더니 정작 자기는 안 드시고,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호캉스 시작하기 전부터 순조롭지 않고,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각자의 생각이 있다. 분명 빨간 날인데 출근한 것보다 피곤한 이 기분은 무엇. 역시 가족끼리는 24시간이 한계인가. 이리 투닥, 저리 투닥 쉽지 않다.

아, 직딩에게 황금같은 연휴인데, 연휴동안 나에겐 계획이란 게 있었지. 그러다보니 마음이 조급했다. 내일 부모님 보내 드리고 나도 좀 쉬었다가, 계획한 일을 해야지.


그렇게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자마자 부모님을 보내드렸다. 2박 3일이나 같이 있었는데도 부모님은 아쉬우신지 연신 섭섭해하신다. 그저 내뺄 궁리나 하는 딸내미가 뭐가 이쁘다고.

집에 돌아와서 쉬었다가 점심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엄마가 두고 간 소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많이도 사셨네. 따뜻한 쌀밥 짓고 불고기 만들어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보내 드릴걸. 후회하며 혼자 먹을 불고기를 만들어 본다.


재료 : 캔콜라, 생강큐브, 양파, 다진 마늘, 대파, 간장, 후추, 소고기



소고기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 주고 양파를 갈아서 재워 주거나 간단하게는 콜라에 재워준다. 콜라는 고기가 잠길 정도로 부어주고, 생강큐브와 다진 마늘 한 스푼을 넣는다. 간장을 미리 넣으면 고기가 질겨지므로 간장은 조리하며 넣어주고 미리 넣지는 않는다.



깊은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대파와 양파를 볶는다. 야채가 어느 정도 물렀으면 30분 정도 재운 소고기를 넣고 볶는다. 나는 냉동실에 보관 중이었던 야채를 사용해서 미리 물러질 때까지 볶았지만 신선한 야채는 식감을 살려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기를 볶으면서 간장 2-3 스푼 넣어준다. 국물 맛을 봐가며, 짜지 않도록.

단 맛이 세질 것 같아 고기를 재웠던 콜라는 같이 넣지 않았다. 하지만 달달하고 국물 자작한 불고기를 원하면 고기 재운 콜라도 같이 더해줘도 좋을 듯.



냉동실에 우거지도 있길래 같이 볶았다. 우거지는 의외로 소불고기와 잘 어우러졌다. 불 끄기 3분 전 청양고추 2개 썰어 넣고, 2분 전 참기름 두 스푼 둘러주고, 1분 전 달걀 하나 톡 깨서 흰자만 익을 수 있도록 팬 뚜껑을 닫아준다.



고기를 노른자에 콕 찍어 먹으면 스끼야끼 느낌도 나는 것이 더 맛있다. 엄마가 준비한 음식들에 비하면 준비할 것도 없이 뚝딱 만들어냈는데, 점심 한 끼 해 드리고 보내드릴걸 뭐가 급해서 눈 뜨자마자 헤어졌는지.

직장에서 사람 이야기 듣는데 지치다 보니 정작 부모님 말씀은 들어드릴 여유가 없었다. 남이 싫은 소리 하는 건 사회생활이란 핑계로 허허실실 넘어 가놓고는 정작 부모님 잔소리에는 날을 세웠다. 정작 진짜 나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부모님뿐인데도. 그렇게 생각하니 남한테 아무 소리 못하고 부모님께 싫은 소리한 게 몹시 억울하다.

부캐를 키워보겠다고 부모님과 보낼 시간은 줄였다.

아빠와 엄마를 만날 때마다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지는데, 나는 대체 뭣이 중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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