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5화

죽음의 신비, 느리게 하는 애도

by 해리포테이토

죽음의 문 앞에 있으면 저승사자를 만나는 것 같다. 저승사자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른 듯 하다. 임종 무렵 만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경이로워서 글로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나쁜 친구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교회 바로 옆으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짐들을 다 옮기고 마지막으로 몸이 건너가던 중, 길에서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의사는 그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오빠는 친척들에게 연락하는 것으로 장례 준비를 시작했다. 산소호흡기를 괴로워하는 엄마를 보고 중환자실 간호사가 말했다. 무의식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엄마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3개월 뒤 2013년 5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저기 나쁜 친구가 와 있어."

돌아가시기 며칠 전이었다. 엄마는 무서운 듯 바로 보지도 못하고 곁눈질로 문쪽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내가 누가 와있냐고 물어도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무렵 우리는 엄마의 치매를 의심하던 때였고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쁜 친구'가 저승사자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픈 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소 즐기던 추어탕과 딸기를 자주 찾았으며 침대에서 혼자 내려오다가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비록 당장은 먹을 수 없고 걸어갈 수 없었지만 곧 퇴원해서 과거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때 방문한 저승사자는 당연히 나쁜 친구였을 터.




아름다운 그곳

그의 몸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심하게 낡아가고 있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따 온 그의 머리는 묵직한 지혜로 가득했으며 하얗게 샌 머리카락은 중후한 멋을 띠고 있었지만, 이태 전 스무세 살의 아들을 떠나보낸 뒤부터 그의 몸에서는 근육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두 다리는 나무젓가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가느다란 솜털처럼 힘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허공을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주 오래도록 응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그 허공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집은 16층 아파트였다. 하루는 베란다에서, 그 가벼운 다리를 하고 서서 허공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그를 발견하고 아내가 뭐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지개를 보았나.. 알록달록 봄꽃의 향연을 보았나.. 신비로운 오로라의 빛을 보았나.. 은하수와 같은 우주의 별들을 보았나..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결코 알 수 없으리. 살아있는 동안은.


그리고 며칠 뒤의 이른 아침,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너무 아름다운 그곳으로 떠났으리라. 그의 시신은 정갈했고 딱딱했고 차가웠다. 2025년 5월 5일은 그가 떠난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죽음을 애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말했던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가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말했던 "저기 나쁜 친구가 와 있어"를 떠올리게 했다. 다시금 죽음의 미스터리를 생각한다.



죽음의 신비를 글로 쓰는 것은 무리다.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글을 쓰고 싶은 자극을 준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Black-throated green warbler. Blackburnian, W. Mourning warbler.jpg Black-throated green warbler. Blackburian, W.Mouring warbler





keyword
이전 14화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