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6화

당신의 날들, 기일 기일 기일 기일

by 해리포테이토

조선의 성리학자 서경덕은 어렸을 때 궁금한 것이 있으면 글자를 쓰고, 그 글자를 보며 이치를 깨우쳤다. 이를 테면 풍風을 써놓고 바람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선扇을 써놓고 부채의 원리를 터득할 때까지. 나도 가끔 그처럼 해본다.



얼마 전부터 꽂힌 단어는 '기일'이다. '기일'은 여러 한자어가 있는데,


"사람이 죽은 날"인 "기일 忌日"과


"정해진 날짜"를 뜻하는 "기일 期日"과


"며칠"이라는 뜻의 "기일 幾日",


"홀수의 날"을 뜻하는 "기일 奇日"이 있다.



나를 끌어당긴 단어는 홀수의 날인 기일이다. 기이할 기奇를 쓰는 이 기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칠월칠석, 오월오일 단오, 구월구일 중양절, 삼월삼일 삼짇, 칠월보름 백중 등 명절과 국경일들도 기일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날인, 이 기일奇日은, 홀수 즉 '짝이 맞지 않은 날'이다. 왜 짝이 맞지 않은 날에 의미를 둘까?


왜 홀수의 날에 의미를 두는지, 그 이유에 대해 검색해서 지식으로 습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나는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며 문득문득 생각해 보았다.


홀수의 날이라.. 짝이 맞지 않음에서 오는 여유, 딱 들어맞지 않음에서 오는 나머지, 그런 시간들.. 어쩐지 흥미로웠다. 좀 더 생각해 볼 테지만.


짝이 맞지 않음에서 오는 남은 부분, 여분의 그 무엇, 그 기일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으로 여겨진다. 무언가 있을, 그런 미스터리한, 비어있는, 틈의 시간이, 홀수의 시간 속에, 추구해야 할 지혜가 있는 건 아닌지.



뜻을 달리하지만 같은 음으로 말하는 기일들,


기일 忌日, 기일 期日, 기일 幾日, 기일 奇日


이 모든 날들은, 나와 너의 우리의, 다가올 시간들이 아닌가..



개인의 역사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날들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날들 하나하나를 글로 담아보는 게 어떨까.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Deep Space Atomic Clock Orange NASA (American, 1958 -)




keyword
이전 15화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