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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8화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품사에 대해

by 해리포테이토

품사는 단어를 성격에 따라 나눈 것이다. 품사를 알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 쓰는 데 도움이 될까?



'사랑'은 명사이고 '사랑하다'는 동사이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 말은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광고 카피만큼이나 신선했다.


'사랑'이 추상명사인데도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고 한 말이 새로웠던 것은 함축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적인 문장이라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인 행위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명사'로서의 '사랑'은 사랑을 이룰 수 없을 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의 대사만큼이나,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안타깝고 서럽고 슬프다. 하지만 안다,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사라지지는 않을지언정 변하는 거라고. 그래서, 사랑은 명사로서 체언으로서, 이름처럼 몸처럼 굳건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도 사람처럼 성품이 있다. 비슷한 성격끼리 단어를 모아 놓은 것이 품사이다. 요즘 자기소개할 때 ESTP니 INFJ니 하는데, MBTI를 알면 축약적으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단어도 품사를 알면 성격을 더 잘 알 수 있다.


단어를 나눌 때 사용하는 기준은 형태, 역할, 의미이다. 단어의 모양이 변하는지 안 변하는지, 단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따라 나눈 것이 품사이다.



품사는 단어의 형태가 변하느냐 안 변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가변어와 안 변하는 불변어, 둘로 나눈다.


단어의 역할에 따라서는 다섯 언니들이 있다. 체언, 용언, 수식언, 관계언, 독립언.


의미에 따라 나눈 것이 품사이며, 한국어의 품사는 9 품사이다.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조사, 감탄사.



물론 글을 쓰는데 품사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체화된 문법적 규칙이 우리 몸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글을 잘 쓰겠다고 품사를 따로 공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쓸데없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굳이 더 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쓸모없을 지식을 습득해 두면 그 쓸모없는 지식이 베이스에 깔려 알게 모르게 큰 차이를 주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 소설작법 선생님의 했던 말이 기억난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소설도 잘 쓴다고. 본문에서 묘사와 서술, 대화 등의 적절한 비중과 타이밍 같은 걸 수학적 머리로 잘한다는 말이다. 실생활에 쓰지도 않는 수학을 쓸모없다 생각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품사 같은 문법 규칙을 알아두면 편안해진다. 소통의 오류도 없다. 문법은 실질적으로 쓸모가 있다. 이를테면 주격조사와 보조사를 구별하는 것만큼의 섬세한 작은 차이의 의미를 아는 쓸모. 예를 들어, '해리가 글을 쓴다'와 '해리는 글을 쓴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앞문장은 주격조사를, 뒷문장은 보조사를 사용한 것으로 의미가 더 보탠 것이다. 우리말은 '-이,-가'는 주격조사이고 '-은,-는'은 '-만, -도, -마저, -조차'처럼 의미를 더해주는 보조사이다.


('글을 쓴다'는 서술어의 주체로서의 주격조사로 '해리가'로 그냥 해리가 글을 쓴다는 뜻을 전하는 게 앞문장이라면, '해리는'으로 표현된 것은 가령 누구는 춤을 추는 데 해리는 글을 쓴다든지 하는 등의 문맥을 통해 전해는 보충 설명이 담긴 것이다)



칼 세이건은 규칙을 "신성하다"고까지 표현했다. 그런데 신성하기까지 한 규칙은, 깨뜨리고 싶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규칙은 그 안에서 자유를 주고, 규칙을 깨뜨리는 자에게는 드넓은 자유를 주지 않을까.


자유를 준 사랑은 더 끈끈해진다. 결속력이 강해지고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랑은 틀에 가둘 수 없다.


역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The grammar of ornament – Title page (1910).jpg The grammar of ornament – Title page (1910) Owen Jones (English, 1809 -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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