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꾼 꿈이 진짜로 일어나게 될 거요"
우리는 어릴 때 아주 높고 귀한 꿈을 꾸었다. 그 꿈들은 애석하게도 대부분 흐려지거나 아주 사라졌다. 어떤 꿈은 도마뱀이 잘라낸 꼬리처럼 남아있다가 그림 동화책을 읽으면 보석처럼 꿈틀거리며 빛을 낸다.
어릴 때 놀던 골목길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어느 집 정원에서 자라고 있던 그 나무는 담벼락 밖으로까지 잎을 무성히 달고 과일을 열어두곤 했다. 골목길에는 아주 작은 실개천처럼 물길이 지나고 있었다.
길바닥 아래로 흐르던 물은 이따금 깨진 돌길 사이로 흐르는 물을 보여주곤 했는데, 아마 하수구 역할을 했을, 그 물은 이상하게도 맑았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의 어느 골목길.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때는 9년 남짓, 학교 가는 길에 있던 산복도로와 그 도로 아래쯤에 있는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뒤 홍은동에서 남가좌동으로, 상월곡동에서 봉천동과 상도동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동네를 다녔지만 딱히 정감 어린 자연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런데 동화나 그림책이 어릴 적 그 골목길의 정서를 부르곤 했다. 그림책은 이야기의 맛과 그림의 맛을 통해 유년의 정서를 소환하며 즉각적으로, 어릴 때 무화과나무가 있던 그 골목길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꽃이 없다는 뜻의 무화과는 사실은 꽃과 과일이 함께 열려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얀 씨알이 오종종 박힌 빨간 속살의 무화과.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는 꿈을 현실화시켜주는 마법의 무화과 이야기이다.
옛날 혹은 지금 어딘가에 치과 의사 ‘비보 씨’가 있었다. 비보 씨는 몹시 까다로운 사람이라 병원과 아파트 구석구석 늘 깔끔하게 청소를 한다. 반려견 마르셀이 소파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무섭게 야단친다. 강아지 마르셀은 짖을 수도, 산책에 나가서도 맘껏 냄새 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비보 씨네 병원에 한 할머니가 왔다. 이가 너무 아팠던 할머니는 치료를 받은 뒤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는 돈보다 더 좋은 걸 주겠다며 무화과 두 개를 건넸다.
“이 무화과는 아주 특별하다우. 선생이 꾼 꿈이 진짜로 일어나게 될 거요.”
비보 씨는 화를 내며 할머니를 쫓아냈다. 할머니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비보 씨는 밤참으로 무화과 하나를 먹었다. 다음날, 그가 밤에 꾸었던 꿈이 현실로 일어난 것을 목격한다. 비보 씨는 할머니가 한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고, 남은 무화과 하나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한다. 우선 원하는 대로 꿈을 꿀 수 있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꿈을 꿀 준비를 완벽히 갖추었다. 이제 무화과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면 억만장자가 될 터였다.
그런데 비보 씨가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동안, 강아지 마르셀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아주 흥미로운 결말을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에서 마르셀의 꿈은, 비보 씨의 꿈과 교환된다. 인간의 꿈이 강아지의 꿈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결말이 통쾌한 그림책이다.
‘소원’을 이루는 이야기들은 많다. 그중 영국 작가 윌리엄 제이콥스가 쓴 '원숭이 발'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 발’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한 수도사가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마법을 걸어 만든 것이었다. ‘원숭이 발’은 돌고 돌아 화이트 씨의 손에 들어왔다. 화이트 씨 부부는 첫 번째 소원으로, 돈이 생기기를 바랐다. 그러자 원하던 액수만큼 돈이 들어오는데, 그것은 아들의 죽음 값이었다. 사고로 죽은 아들의 보상금이었다. 화이트 씨 부부는 슬픔으로 오열하다가 두 번째 소원으로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빌었다. 그러자 피투성이 몰골의 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왔다. 부부는 공포에 사로잡혀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을 빌었다.
“아들을 다시 죽여주세요.”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인간의 운명은 소원을 통해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생명은 어떠한 소원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행운이든 불행이든 모든 것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인가.
우주와 인간에는 일정한 에너지가 있어서 변화하고 이동하지만, 없어지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 ‘총량의 법칙’, ‘등가 교환의 법칙’ 등으로 부른다. 이것이 소원 혹은 마법의 기초 원리일 것이다. 화폐, ‘돈’은 대표적인 교환 경제다. 에너지를 사용하자 돈이 생기고, 돈을 주면 물질을 얻는다. 가만 생각해 보면 마법 같은 일이다. 마법은 일상에 있다.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들을 솔직하게 적어보면 지금의 욕망도 보인다.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터무니없는 욕망을 면밀히 살펴보라고 한다. 그러면 욕망이 변화된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욕망과 지금의 욕망을 적어보는 것도 흥미로은 글쓰기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