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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Nov 08. 2024

질투는 나의 힘

저번 주가 생일이었다. 덕분에 오랜 친구들 그리고 같이 일하던 전공의 선생님들과 교수님께도 축하 메세지를 받아 여러 연락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인간관계들을 쭉 돌아보며 내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내 삶을 이렇게 진행시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직 마치지 못한 전공의 생활까지 나를 망가뜨리면서도 성장시킨 원동력은 '질투심' 이었다.


어렸을 적 나는 사촌오빠와 많은 비교를 당했다. 오빠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항상 아랫 동생들을 잘 챙겨주었고 그 외의 면모로도 내가 존경할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나에게 온갖 서브컬쳐, 특히 애니들을 알려준 사람이고 그 외에도 많은 영향을 받은 덕분에 오빠와 비슷하게 특목고, 의대 라는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 좋은 결말을 맞았지만, 당시에는 오빠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엄마의 잔소리가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오빠와 함께 내가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때 두번에 걸쳐 고모가 사는 호주에서 2, 3달 씩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 비교를 오랫동안 당해서인지, 나는 그곳에서 오빠와 무슨 게임을 하든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는 순간 미친 듯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 오빠는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시기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때는 같이 다니는 무리 속에서도 성적에 대한 시기심 뿐만 아니라 이성관계로 얽힌 질투심들이 혼재했다. 그럼에도 우정은 정말 큰 부분을 차지 했고, 나에게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들이 많이 남은 시간이지만 실수도 많았다. 그 속에 있던 연락이 끊긴 친구들은 나에 대해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질투나 시기를 비롯해 16살 청춘들에게 얽힌 여러 감정들은 각자에게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게 해주었고 또한 다양한 미래를 그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그 관계들이 또 다른 후유증을 나았던 것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질투심은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특목고에 진학하면서 나는 순전히 '똑똑한' 친구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던 지라 어떻게 공부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었고, 운동이나 다른 특기 활동들도 뛰어난 친구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게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수반된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오롯이 책에 빠져 들어 살았고 좋은 성적은 내지 못한 채 첫 수능을 마무리 지었던 것 같다. 재수할 때도 학원의 한 반에 우리 고등학교 학생이 기본적으로 5명씩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의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재수 때는 항상 자신만만해 하던 수학을 망쳐서 오히려 현역 때 보다 선택할 수 있는 대학교의 폭이 줄어 들어서 어머니의 여러 수고와 노력으로 굉장히 힘겹게 추추가 합격으로 한의대를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한의대에서는 들어가자마자 반수를 생각하고 있었어서 많이 놀러다니지도 않았고, 그 때 만난 친구의 도움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로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해본 것이 그 시절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의 내 감정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좋은 학교를 진학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좌절하고 숨어들었던 나의 모습이 기억난다. 반수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는 핸드폰을 없애고 공부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살았고 어쨌든 그런 노력 덕분에 삼반수를 통해서야 나는 원하던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의대 공부는 생각보다 내 적성과 맞지 않았고, 대학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았다. 장거리 연애로 인한 외로움과 그 때쯤 커진 나의 허영심 덕분에 만나던 친구와도 헤어지면서 허무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밴드부 활동도 무대를 끝낸 뒤의 허무감 때문에 결국엔 그만두게 되었고, 봉사활동 동아리도 일시적인 봉사로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너무 적었기에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성적은 잘 받고는 싶었지만 노력과 머리가 부족했고, 3등급이라는 어정쩡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국시는 말도 꺼내지 못할만큼 최악의 성적을 받고 대학교 생활을 마무리 하였다. 


그래도 하나 변하지 않았던 것이 '성형외과' 라는 꿈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인턴 시절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덕분에 전공의 시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음에도 인턴 성적과 보너스 점수 등으로 성형외과 전공의가 될 수 있었다. 성실하지만 요령이 없는 일머리 덕분에 들어와서 큰 고생을 하게 될 줄은 그 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전공의 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마찬가지로 '질투심' 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들은 자교생이고 남자인 전공의들을 더 많이 선호했고 특히 성별에 대한 것은 환자들이나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로 가진 선호도였다.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안되면 집이라도 잘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욱 내가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내가 이미 가지지 못한 것들로 인해 나를 대하는 행동들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굉장히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그런 조건들 때문에 내가 차별 받고 있다는 것을 일찍 인지했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그 때는 내가 일을 잘 못해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책감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전공의를 그만두게 되면 이런 질투심에서 자유롭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온갖 곳에서 쏟아지는 주변인들의 결혼 소식과 청첩장 모임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특히 좋은 상대방과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생기는 질투 뿐만 아니라 더불어 내 안에서 자라나는 허영심이 더 나를 괴롭게 만든다. 인성이나 생각이 정말 바르고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조건이 맞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마음의 장벽이 느껴질 때 스스로의 위선을 마주하게 되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속 마지막 두 문장은 이와 같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일생동안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며 인정 받고 싶다는 욕구와 질투심으로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내 스스로를 사랑한 시간은 특별히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조건들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의정갈등 뿐만 아니라 국가나 세계의 여러 정세들의 혼란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투심은 그동안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이렇게 정체된 상황에서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멈추어진 시간이 남에 대한 비교의식이나 나에 대한 교만함이나 허영심 없이 스스로를 마주할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계속된 훈련으로 내가 거듭날 있기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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