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새: 그 남자 구름 아기 테오

-문상

by 시인 이문숙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지인의 시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다. 세 명 여자의 이름이 1호실에 깜박였다. 어떻게 한 빈소에 고인이 세 명일까. 나는 화면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나중에 알게 됐다. 신림동 반지하 침수 사건으로 세상은 끊임없이 넘쳐흐르는 흙탕물을 송출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문은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열리지 않았다. 지인에게 구조 전화를 했으나 그곳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방범창을 뜯으려 했으나 순식간에 차오른 물은 그것을 지연시켰다. 이후, ‘멸실’이라는 공공의 언어가 거리의 대형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멸실? 해충 박멸처럼 ‘반지하실’을 박멸하겠다는 관용차 같은 단호한 언어.


물이 빠지고 진흙을 씻어내니 그곳에도 생화보다 더 아름다운 라넌큘러스 같이 이국적인 조화가 꽃병에 꽂혀 있었다. 싱크대에는 해바라기 모양의 친환경 수세미가 반짝이고 있었다. 코발트빛과 클림트의 황금빛 벽지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여자는 면세점에서 고객보다 더 아름워서는 안된다는 회사 규약에 맞춰 옅은 화장을 하고 물건을 팔았다. 동료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불이익을 감수하며 발언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픈 언니와 엄마를 돌보고 13살 딸을 키웠다. 아픈 엄마는 병원에서 진료 받느라 그곳에 없었다.


이후, 나는 ‘멸실멸실멸실’ 이 생경한 집단의 말에 부응해 글을 도무지 쓰지 못했다. 나도 급기야 단행한 것이다. 내 언어에 대하여 세상의 문장에 대하여 강력한 박멸을 요청한 것이다.


이를테면 ‘멸문’, 글쓰기의 박멸. 그 글쓰기의 효용에 대한 자책과 의문이 그날의 콸콰르르하는 흙탕물처럼 흘러 나를 침수시켰다. 나의 가재도구는 아끼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책들은 더이상 그 기능을 멈추고 작동을 거부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여기 돌아와 글을 쓴다. 이걸 ‘멸문’이 아니라 ‘회문’이라고 지칭해도 될까?


사막의 월아문처럼 달의 어금니를 곧추세우고 똑바로 앉아 슬픔의 모후여.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당신의 맨발을 만지며 저는 다시 돌아왔나이다.


냉동실에 그녀가 13살 딸아이를 위해 언니를 위해 해놨을 지도 모를 꽃모종처럼 랩에 싸인 냉동밥. 행상트럭에서 구입했을 값싼 편백나무 베개. 세면대 파이프에 걸어둔 조금씩 닳아가고 있을 방향제. 빛이 약간은 스며드는 방범창의 아사천 커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쉽게 발을 꿰고 24시편의점에도 후딱 가고 그나마 밝은 외눈박이 가로등에 기대 내일의 일정표를 살필 때 한 발에서 벗겨져 팽겨쳐져도 좋은 삼선슬리퍼. 아주 푹푹 찌는 날, 문이 닫히지 않게 껴놓던 한 짝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


맨발로 신어도 발 애리지 않은 곰발 겨울용 털실내화는 아직도 그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 있을까. 여전히 두 짝 중 한 짝은 엎어진 채 콜콜 자고 있을까.


또 몇 년 전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는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의 올케는 그녀의 엄마를 간병하다 먼저 갔다. 치매인 아버지는 사진 속의 여자가 누구인 줄 알아보지 못한 채 편육을 뜯고 있었다. 손자는 분만 중인 아내 곁을 지키느라 오지 못했다.


그곳에는 문학평론가, 시인, 불문학자, 호주 시인들이 뒤엉켜 있었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의 이름은 테오다. 테오는 Theo, 한국 이름은 태호, theo-는 신과 하느님과 관련한다.


오늘 공책을 들여다보다가 그 과거의 기억 명료한 1호실이 왔다. 거기에 이런 ‘회문’이 있었다. 빙빙 제자리를 도는 무엇을 감췄는지 알 수 없는 새파란 급류. 휑휑 도는 자동회전문 앞에 선 아뜩함이 번개처럼 머리를 쳤다.


빙빙 도는 나뭇가지에 새가 한 마리 있다. 그 가지에 그는 구름이 되어 앉아 있다. 구름과 새는 서로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선연히 알아보지 않으나 동공은 벌어진다. 서로 알듯 말듯하다. 아기는 물고기 호흡을 벗어나 폐호흡을 시작했다. 아기 테오Theo는 전지전능하지 않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공책에는 이런 시가 있었다. 그, 그녀, 아기가 혼용된 나무에 멸문을 모르는 기린은 잎을 따먹다가 잎들이 살겠다고 더 높은 가지에 매달리자 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처음도 끝도 모르는 생명의 나무처럼 뱅뱅 돌고 있었다.


그 빈소에서 부지런히 편육 접시를 나르던 그녀도 이제는 이곳에 영영 없다. *진통제 1mg도 무거워 그 고통을 잊으려 공중제비를 돌던 그녀. 너무 아파 죽은 엄마를 부르며 엄마 살려줘 하던 그녀도 어느덧 없다.


그 세 여자가 살았던 반지하 집.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돌아가야할 집.


맞은 편 세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문발로 걸어논 오래된 구슬주렴은 지금도 구슬 한 알씩을 흘리고 있을까.


그 색색의 구슬이 버리기에 아까워 모아둔 이빠진 그릇. 아직도 빛 비껴드는 방범창 창턱에서 서쪽으로 침수되는 빛을 모아들이고 있을까.


그 빛들 여전히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아름다울까. 그 캄캄하지만은 않았던 그 반지하의 공간을 감히 ‘빛의 빈소’ 같았다고 말해도 될까.


*그녀 새: 그 남자 구름 아기 테오

이문숙


그곳에 갔다 발은 날렵하고 쌩하게

그녀는 사진 속에서 씽긋하고

그는 흰 구름을 안고 비칠 앉으신다

손자는 자녀를 보려고 진통 중인 아내 곁에 있어

여기 없다

찔금 웃고 떠들어도

삶이란 잡역부는 자꾸 화환을 늘어놓고

편육덩이는 굳는다

어떤 나라에서는 새 요리를 먹을 때

Y자 모양의 뼈를 둘이 잡아당겨 긴 쪽을 가진 자가

행운을 가져간다 한다

국물 속에 빠진 혀는 붉고 두툼하다

지금 두둥두둥 오고 있는 아기가 긴 쪽을 가져간다

Y자 모양의 갈림길

그는 가고 그는 온다

췌장이라는 말을 발음하려는 혀처럼

초췌라는 말을 발음하려는 뾰죽한

이처럼

바랜 바지 올에 가느다랗게 드러난 발목

사진 속의 아내를 까맣게 지운

천백 살의 늙은 아기


*테오는 Theo, 한국 이름은 태호, theo-는 신과 하느님과 관련한다.

*최정례 시집 ‘공중제비’에서


*Gustav Klimt, Tree of Life


#이문숙시인#신림동#반지하침수#생명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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