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께, 잘 넘어지고 잘 일어서는
선생님, 제가 복개된 연신내 근방에서 일하던 때 같아요. 숨결 끊어지도록 힘든 때, 그때 갈현동 158-2번 버스정류장. 158도 158-1도 못되는 저는 언제나 주변부 사람이었지요. 그때 제가 숨결을 끌고 길바닥에 서너 시간을 버리며 서울을 오가는 건 선생님을 언젠가 이 부근에서 우연히 부닥치리라는 막역함 때문이었어요.
부서진 목마처럼 저는 갈현동 골목길에서 혹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떠돈 적이 있어요. 신약 시음용 배우’ 처럼 아기 업고 태양을 서성대는 선생님을요.
골목에는 세상의 공원을 다 실어논 듯한 ‘리어까’가 돌고 있었구요. 양복쟁이 중년 남자가 카메라를 메고 사진 찍어요. 추억의 찰칵 한 장. 이렇게 외쳐대었구요.
제 머리 속에 그 풍경들이 끓어 넘칩니다. 어설프고 조악하기만 풍경화 거친 붓질. 부서질 듯 뻐거덕대는 스프링 위 목마. 그 목마의 과장되게 길게 그려진 속눈썹.
박절하게 길기만 했던 그때 그 시절. 그 시절 그때를 눈속임의 유사 예술이자 얄쌍한 속눈썹 연장술 같은 저의 ‘소녀시대’라고 불러도 될까요.
기괴하게 시뻘건 꽃 덩어리. 끈적대며 녹아내리는 ‘뼁끼’ 위로 굴러 떨어지는 활화活火의 태양. 거기서 떨어질까 목마의 귀를 꽉 잡고 있는 아이의 붉은 미간.
‘숨결을 끌고 숨결이 다하도록’이라는 말이 좋다. 그 많은 노인들이 힘들게 두 발을 끌고 걷고 있는 거리에 65세인 내가 소녀시대 같다. 내가 베네치아의 소녀시대 같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현대의 고장난 이마를 ‘그림 속의 물’ 고해소에서 들어주는 태양의 여사제이자 고향은 지구상 최하기온 영하 섭씨 86도 ‘오이마콘’인 빙하의 딸. 그러나 태양 표면열 6000도를 열망하던 당신이 인생의 비천을 해질녘 찡찡대는 아이처럼 업고 골목 어디선가 서성대고 있을 거라는 미천한 생각이 저를 다시 점화해서 일으키곤 했어요. 그때의 갈현동은 퇴근길 박석고개에서 보면 그 이글대던 태양빛도 숨결을 딱 적시에 끊지 못해 발을 질질 끄는 것 같았어요.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가 만든 ‘슈톨퍼슈타인’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알려주었는데 혼자 다시 갔을 때는 찾지 못했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선생님의 33세의 팡세를 끼고요. 당신이 입시 준비생일 때, 당신이 직접 가서 봤다는 수유리 어떤 언덕. 시멘트 푸대 탁탁 터는 소리를 저는 그 고개에서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소리는 관공서 현관의 괘종시계보다 더 육중하게 땡땡대며 제 ‘걸림돌’로 오작동되었지요.
시멘트 부대 털어서 가게에 넘기면 오십 장에 백 원 받는다우. 내 보기에 학생은 팔자가 좋아. 달밤에 미용체조하는구먼.
-김승희, 33세의 팡세
‘정신의 미용체조’나 하던 그때쯤 직장 계단에 놓여있던 시멘트 푸대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어요. 그때 시멘트 푸대를 제 인생에서 처음 보았던 것 같아요. 입을 쩍 벌린 푸대 속의 거무칙칙한 물질. 그 푸대 위에 선명했던 날개 달린 천마.
일명 ‘천마표’ 시멘트였어요. 갑자기 정신이 버쩍나며 몸을 일으켜 세웠어요. 계단의 부서진 곳을 메우며 굳어가는 곳에 찍어논 누군가의 고의성 짙은 발자국. 혀 속을 흘러가던 최초의 음식 같은 슈톨퍼슈타인.
슈톨퍼슈타인이란 말은 ‘걸림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다. ‘넘어져야 정신이 든다, 는 소박하고 날카로운 의미.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저는 그게 왜 천마표 시멘트일까 미심쩍었어요. ‘세멘트cement’는 동사로 ‘접합하다, 결속하다’이고 ‘콘크리트concrete’는 ‘구체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지만요. 이렇게 잘 결속해서 구체화되는 덩어리. 그 시멘트의 이름이 ‘천마’라니요. 시시각각각 굳어가는 주검의 덩어리. 소멸하는 존재의 반죽. 끝없이 히이잉대는 무감각의 동물적인 마천루. 시멘트 푸대 탁탁 터는 소리 같은 영구존치의 슬픔.
신은 인간을 반죽할 때, 그 반죽을 스스로 깨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왜 하지 않았을까요. 이 감각은 당신이 들었다는 시멘트 푸대 탁탁 터는 그 소리와 히잉대는 천마의 울음 소리와 뒤엉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고 긴 저의 ‘소녀시대’를 지배하고 오남용 했지요.
올리비아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6곡인가요. 천사들이 고지하는 ‘뒤엉킨’ 무지개, 그 무지개의 뒤죽박죽인 색깔의 배열. 그 배열을 그 천마표 시멘트에서 보았던 같아요.
할머니적 감각이란 소멸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위험하고도 부드러운 사랑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선생님, 저는 지금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를 그 나이를 지나가고 있어요. 길거리 화단에서 팬지 꽃을 들여다 봅니다. 팬지pensée 꽃은 팡세Pensées처럼 ‘생각하다penser’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청색 장미’도 팬지 꽃의 파란 유전자를 연구해 창조했다고 하니 당신의 팡세는 파란 색 장미인 것만 같습니다. 33세, 66세, 99세의 팡세. 선생님, 99세는 상상도 못하시겠다고요. 아니, 77세, 88세의 팡세.
77세에 미리 써보는 ‘99세의 팡세’도 멋질 것 같아요. 할머니의 삐꺽대는 관절의 감각으로 말이예요. 저는 선생님의 태양미사를 집전하는 여사제 같은 모습도 초자연적으로 경외스럽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베네치아의 ‘소녀’도 존귀하답니다.
소멸을 울면서 어루만지는 여자, 그러나 허무를 부드러이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여자, 할머니야말로 파괴와 재난으로 가득 찬 세기의 불안을 구원할 만하지 않은가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선생님, 시는 ‘페가수스의 천마’일까요. ‘메두사의 돌’일까요. 언젠가 화단 가의 돌을 만져보니 흰돌은 차갑고 검은 돌은 따뜻한 감각을 가졌더라구요. 태양빛을 내장하거나 반사하는 것에 따라서 돌의 온도는 아주 다르더라구요. 각각의 돌의 고독, 돌의 허무, 돌의 선별적 내포.
카도로 거리 카페에 나가 아스파라가스가 한 줄 장식되어 있는 리조토를 점심 겸 저녁으로 먹으면서 후배를 생각했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후배에게 오히려 세상의 미움을 받을 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당신의 겨우 ‘한 줄’ 밥 위에 장식되어 있는 아스파라가스. 그 ‘한 줄’에 찔끔했습니다. 그 한 줄의 고독.
10미터 미인처럼 고독을 두르고 있을 때 인간의 품위와 영광은 지켜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누구도 10미터 미인이 되기는 어렵다. 땅이 너무 좁아서인지 고독의 간격이 지켜지지 않는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돌도 한때는 길러도 보았지요. 맑고 하얀 석영이라는 돌 말이예요. 깨끗하고 잘 닦인 항아리에 넣어서요.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테네시의 항아리Anecdote of jar’를 모르던 무지한 그 ‘소녀시대’에 말이예요. 매일 물도 주면서 들여다보고 세수도 목욕도 시켜주고요. 돌이 성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길을 걷다가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다. 들고 있던 생수 두 통과 야채, 고기, 빵이 나동그라지고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그러나 어느날 돌도 병이 들더라구요. 안색이 거무칙칙해지고 실금이 생기고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항아리는 열심히 돌의 간호에 최선을 다했지만, 돌은 그만 회생하지 못했어요. 그때 그 돌을 돌보는 과정이 오히려 시 같았어요. 그때는 페가수스의 천마가 아니고 메두사의 돌이 그 불완전함의 묵시와 난청이 더 시 같았어요.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돌아오고 나서 소르본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에게서 받은 한글 메일 하나가 떠오른다. “인생은 각목 같은 것일지라도 소중한 것은 달걀뿐입니다”라는 문장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선생님, 현재의 고장난 수신기. 현대인들의 냉소와 조롱과 환멸을 항아리에 넣어보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불완전함이 할머니의 감각으로 유순해질까요.
한 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넘어질까? 카도로 배 정류장에서 나오다가 또 넘어졌다. 뭘, 왜 이렇게 넘어져? 부주의하니까 넘어지지.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고 이 베네치아 돌바닥 때문이야. 왜 이렇게 도로를 큰 돌들로 듬성듬성 엉성하게 만들어놓은 거야?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당신처럼 타인을 피하고 배척하고 대화를 안하던 제가 항아리 속의 병들어가는 돌들을 만지며 중얼중얼하는 게 그때는 아주 좋았어요. 지금도 선생님처럼 무시무시하게 ‘글 쓰는 여자’는 못되지만, ‘글 쓰는 나’에서 해리되어 가끔은 천마처럼 이 시간을 박차고 날아가는 것이 좋아요. 제 숨결을 끌고 당신의 베네치아, 그 ‘베네치아의 소녀시대’로 이행하는 것이 너무 좋아요.
아쿠아 알타가 올 때면 사람들은 장화를 신고 그런 나무 통로로 올라가 걸어야 한다. 그 나무 통로로 올라가는 계단 첫 번째 입구에 그만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넘어지는 선생님이 좋아요. 잘 넘어지고 잘 일어서는 소녀가 말입니다. 나무통로 그 ‘첫 번째’에서 꽈당 넘어지고도 다시 벌떡 일어서서 걸어가는 ‘베네치아의 소녀시대’, 선생님이 계셔서 찬란합니다.
나는 ‘베네치아의 소녀시대’가 되기에는 실패했다. 소녀시대가 되기에는 몸이 너무 아둔하고 이미 뼈가 굳은 것이다.
-김승희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베네치아에 당신과 같이 간 건 건 아니지만, 베네치아의 살루트와 알로라, 오 솔레미오, 씨뇨레가 쏟아지는 베네치아의 대형 그림을 배경으로 베네치아에 간 척 선생님과 베네치아의 물결을 입고 카도로Ca'd'Oro 황금의 집, 태양을 장신구로 걸고 사진을 찍는 저희가 바로 ‘예술 만세viva arte viva’입니다. 이 눈속음의 예술trompe-l’œil이 만세입니다.
저희는 베네치아에 같이 가진 못했지만, 돌부리에 자주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알로라, 그래서 제자리에 박혀 늘 삶이 지긋지긋하고 권태로운 울퉁불퉁한 돌들을 살짝 흔들어 움직이게 합니다. 알로라, 또 그러므로 그 흔들흔들 퍼포먼스와 ‘미용체조’에 능란한 저희들은 베네치아에 가지 않아도 이미 ‘베네치아의 소녀시대’입니다.
빠지기 직전 유치가 흔들리는 것이 공포스런 아기를 달래주는 ‘이빨 흔들흔들 체조’처럼 율동을 하면서요.
*아드리안 코르테, 아스파라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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