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책 읽는 소년
공원에는 아직 추위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소년이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다른 소년들은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며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이 소년은 그런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용기 내어 다가갔다.
"책을 참 열심히 읽는구나. 책 좋아하니?"
소년은 살짝 얼굴을 들었다.
"네, 책을 좋아해요. 하지만 집에서는 마음껏 읽을 수가 없어서, 가끔 이렇게 공원에서 읽어요."
그의 말에 슬쩍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지만,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너무 닮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묘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학교가 끝나면 늘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좋았다. 부모님은 공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교과서 외의 책을 읽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셨다. 그때 내 유일한 탈출구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읽기 시작한 첫 책은 바로 『삼국지』였다. 유비가 불량배들 앞에서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 순간 내 모습이 유비와 같다고 느꼈다. 비굴하고 소심했던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그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갔다. 제갈공명을 만나 형제들과 힘을 합치며 결국 큰 일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성공하려면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형제 같은 친구가 필요하구나', 혼잣말을 했다.
그때부터 친구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삶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었다. 특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이었다.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이 따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고 성숙해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후로 내 삶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의 행복한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가방을 잃어버렸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그들은 내게 도서관 출입을 금지시켰다.
"다시는 도서관에 가지 마라. 집에서 공부해!"
부모님의 단호한 목소리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집에서 몰래 도서관을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남산에 도서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말에 남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그 말에 내 가슴이 뛰었다. 집에서는 공부한다고 둘러대고, 주말마다 남산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도서관 서가에 가득한 책을 보며,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학책을 읽으면서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문예반에 들어가 교내 잡지에 글을 실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작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하셨다.
"시가 밥 먹여 주냐?!"
그 말에 나는 속상했지만,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반항심이 생겼고,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은행원이 되지 못했다. 은행원은 물론 내가 원하던 꿈이 아니었다.
나도 공원에서 만난 소년처럼 책을 사랑했고, 책 속에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내 꿈은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로 인해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책은 내 인생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나는 소년에게 물었다.
"너도 작가가 되고 싶니?"
소년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냥 책 읽는 게 좋아요. 책을 읽으면 제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책은 그런 힘이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진정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거야. "
소년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꿈을 막지 말아야 한다'라고. '아이들이 스스로 그들의 꿈을 찾아가고, 그 꿈을 이루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조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어 그것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해리 트루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