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30분 전에 와서는 "오늘 회식이니까, 알지?"라고 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내 책상을 두드리는 과장의 모습을 보며 짜증(?)이 치밀어 올랐었다. 도대체 뭐가 알지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일정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오라는 행동과 말투는 6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회식이 싫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시쳇말로 소위 '알쓰'여서, 주량에 한계도 있고 얼굴도 금방 벌게진다. 하지만,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 술자리에서 분위기 띄우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의 기준으로 삼는 국내기업에서 도태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입사원 시절, 술을 마시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름 친분 있는 상사에게 집에 가봐야겠다고 하니
물론, 회사마다 각기 조직문화가 있으니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기업(미국계)들의 회식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먹고 마시는 문화였다.
일부 기업에 따라서는 구성원의 일정에 따라 점심에 회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점심 회식을 할 경우에는 간단한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나 브런치를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은 커피 한 잔과 다를 바 없었지만, 알쓰인 내게는 이 정도 주량도 블러셔 한 것 같은 홍조가 얼굴에 생기곤 했다.
외국계 기업의 회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토크(Talk)'다.
국내 기업의 경우, 회식을 할 때 도대체 술을 마시러 온 건지 회식을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무지막지하게 마신다. 정작, 대화가 가능한 상태는 역설적으로 서로 고주망태가 된 상황이라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하는 꼴을 매번 봤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의 회식 역시 술을 곁들지만, 칵테일 한 잔, 맥주 한 잔 시켜놓고 2-3시간을 이야기한다.
특히, 직속상사가 외국인(특히 미국, 유럽인) 일 경우 이러한 토킹은 끝을 모른다. 다행인 건지 어디 가서 지지 않는 투머치토커인 나는 이런 회식 문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회식하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로 회식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 이런 회식 문화 때문에 외국어(특히 영어)를 꾸준하게 공부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몰랐던 나라나 사람들의 성향까지 알게 돼서 호기심이 많은 내게는 매우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회식의 본래 목적은 '구성원들과의 소통'이다.
직접 경험한 외국계 기업의 회식은 본래 목적에 맞게 했기 때문에 알쓰인 나도 오히려 힘들지 않고
구성원들과의 '소통의 장'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회식이니 완전하게 즐기기는 어렵겠지만, 특히 나 같은 알쓰의 유형의 사람들에게외국계 기업의 회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