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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26. 2022

32. 엄마, 아빤 네 손을 놓지 않아. 아가.

가끔씩 한 편씩 라이킷을 달아가며 하루 내내 글을 읽어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 제게도 하루 내내 라이킷 알람이 울리지요. 그 알람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써가야겠단 책임감을 주는지 말씀드리고 싶네요. 당신께 감사합니다.


  아기들은 주기적으로 정해진 기간에 발달검사를 받는다. 위탁 중에는 이 결과를 센터와 계속 공유해야 했다. 센터에 전화를 하기 전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발달 검사에서 아직 어리니 지켜봐야겠지만, 아기에게 자폐 가능성이 조금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복지사님과의 통화에서 아기가 시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손만 보는 게 걱정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땐 나도 복지사님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기가 너무 손에 집착하는 것 같아 병원에 온김에 가볍게 여쭤본 터였다.

  센터에 전화를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말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가. 우습게도 점집에서 들은 입양이 우리 팔자에 없단 말에 이때까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였나? 법원 결정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만 확고하다면 센터 측에서야 문제 삼을 게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꼭 센터에 알려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원의 결정만 나고 나면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일이 아닌, 내 아이의 문제일 뿐이었다.

  짧은 시간에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고, 고민을 했지만 우린 끝내 복지사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왜 그랬을까? 일단 우리가 너무 고지식했다. 알고 있으면서 보고하지 않는 게 어려운 답답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래도 일단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앞섰다. 전형적인 답답이 캐릭터 둘이 산다. 남편과 둘이 먼저 보고를 하고 문제가 생긴다면 또 그건 그때 헤쳐나가면 된다, 우리가 겁낼 건 없다고 마음을 모았다.

  또 큰 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아보려면 센터의 허락이 필요했다. 발달검사를 하는 동네 작은 병원에서 들은 몇 마디에 겁먹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좀 더 큰 병원에서 유능한 의사를 만나 검사를 받고 불안을 없애고 싶었다. 자폐가 아니라 발달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늦지 않게 적절한 조치도 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우리가 복지사님을 마음으로 믿고 너무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사님이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고, 함께 걱정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엔 우리 부부를 제외한 어느 가족보다 그녀가 믿음직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너무 두려웠다. 앞에 펼쳐질 미래가 암담했다. 그때 난 복지사님과 통화할 때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괜찮을 거라는 말, 그 의사가 지나치다는 말, 다음번에 함께 대학병원에 가보자는 말. 난 그 말들이 너무 고마웠다. 누군가 우리 부부와 함께 가준다는 그 말이.  

  이 기간에 우리는 두 가지를 명확히 느꼈다. 하나는 우리가 가족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법적인 부모가 아닌, 위탁 보호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센터에 사실을 전하는 것만으로 아이의 손을 놓을 수도 있을 거란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위치, 가족 중 누가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까 두려운 위치, 그게 위탁 부모의 위치였다. 부모와 자식으로 함께 살지만, 어찌 보면 아직 아무것도 아닌 관계인 이 어정쩡한 순간. 난 오히려, 이 시기에 친정엄마나 다른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바로 말하지 못했었다. 혹시 입양을 포기하라거나, 아이를 돌려보내라고 말할까 봐 겁났다. 내가 아는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지만, 예정된 딸의 고생 앞에선 엄마도 무서운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겁났다.

  두 번째로 깨달은 사실은 그럼에도 우리가 이미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아이를 만나기 전에 이런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면 쉽게 아이의 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낯선 아이일뿐이었을테니까. 함께 먹고 자면서 이미 딸은 이미 가족이 되었다. 더이상 '모르는 아이'도 '남의 자식'도 아니었다. 아이가 우리집에 발을 들인 순간, 우리도 마음으로 아이를 품었다. 서류상으론 아니지만, 마음으론 이미 내자식이 된 후였다. 만약 아이에게 평생에 걸친 장애가 있다고 해도 손을 놓을 생각이 없음을 알고 내가 이미 부모가 되었음을 느꼈다. 남편도 나도, 오히려 딸에게 장애가 있다면 더더욱 손을 놓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옆엔 우리가 있어줘야했다. 우리가 딸의 엄마, 아빠니까.

  아이를 우리의 등본에 올렸을 때, 드디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법적으로 내 새끼라고 딱하니 올라 있을 때의 기쁨. 이제 아무도 내게서 아이를 제멋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안도감. 아이와 나를 쉽게 갈라놓을 수 없다는 확증.

  어쩌면 핏줄로 이어져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난 더  서류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널 내 딸이라고 말해줄 유일한 증거라서. 우리의 삶에 추억이 하나씩 늘어가면 그 시간이 날 오롯한 너의 엄마로 만들어주겠지. 그 세월이 날 네 엄마라고 말해주겠지.


* 감사히도 딸은 이후 검사에서 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잠시 발달 지연을 겪었을 뿐, 건강히 자라고 있어요. 오히려, 언어 발달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폐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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