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겨울까지 나는 시골 아이였다. 논밭 사이를 1킬로미터 가로질러 학교에 갔다. 생일이 빨라 일찍 입학한 나까지 다 포함해도 1학년은 4명. 다른 학년 언니오빠들과 합반을 하여 수업을 했다. 1분단은 1학년, 2분단은 2학년. 언니오빠들 수업이 더 재미있어 보일 때는 괜히 옆 분단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또 한참 멀었다. 운 좋게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주홍색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올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길가에 온갖 것들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걸어 올라갔다. 토끼풀꽃을 엮어 팔찌를 만들기도 하고, 보물찾기하듯이 매미허물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한참 쪼그려 앉아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제때 젖은 흙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지렁이를 집어다가 풀숲으로 던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한 놀이는 무당벌레와의 놀이였다.
무당벌레는 나뭇가지 끝에서만 날아가는 습성이 있다.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시야를 확보하고 날아가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집에 있던 다섯 권짜리 백과사전은 알려주었다. 모든 배움은 오로지 보다 더 재미있게 잘 놀기 위한 밑거름으로 쓰이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그 지식을 무당벌레와 되도록 오래 노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사용했다. 먼저 나뭇가지 두 개를 준비한다. 무당벌레를 그 중 한 나뭇가지 위에 얹는다. 무당벌레가 그 나뭇가지의 끝까지 올라가면 재빨리 다른 나뭇가지를 잇댄다. 그럼 무당벌레는 날아가지 않고 다른 나뭇가지를 마저 올라간다. 주의할 점은 아주 매끈한 나뭇가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으면 나뭇가지 중간쯤 박혀 있는 옹이나 곁가지에서 무당벌레가 음 여기가 끝인가 보군, 하고 날아가 버리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적절한 나뭇가지를 잘 준비하였다면 족히 이 삼 분 정도는 무당벌레와 함께 놀 수 있다. 물론 함께라는 말에는 약간의 억지가 있다. 무당벌레에게는 이것이 아마 놀이가 아닌 시지프스의 언덕과 같은 고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아이 특유의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해 무당벌레도 나와 함께 놀고 있는 것이라 굳세게 믿었고, 무당벌레가 마침내 고행을 끝내고 등껍질 속에 숨겨진 여린 날개를 펴 날아오를 때는 진심으로 “안녕, 또 보자!”하고 작별 인사까지 건넸다.
도시로 이사를 온 후, 친구들이 거의 모든 벌레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거미나 사마귀 같은 벌레는 뭐 그럴 수도 있다지만 무당벌레 같은 귀여운 벌레마저 싫어한다니. 그러나 나도 금방 무당벌레보다는 과자봉지 속에 숨어 있는 따조 같은 장난감이나 문방구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줄줄이 걸어둔 예쁜 스티커 인형들, 그리고 그 때 막 보급되기 시작한 486컴퓨터의 게임들과 더 친해졌다. 세상에는 생물보다 더 친근하고 재미있는 무생물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 내 자그마한 자취방에도 온갖 무생물들이 그득하다. 과자봉지 속 장난감을 모으는 대신 이런저런 디자인용품들을 사 모으고, 스티커인형에 옷을 갈아입히는 대신 매일 거울 앞에서 다른 옷들을 바꿔 입는다. 책상 위에는 내 휴식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하는 노트북이 있다. 생물이라고는 종종 출몰하는 쌀벌레와 여름철의 모기 정도가 전부이다. 반갑지도 않고 친구라 부를 수도 없는 그런, 그냥 벌레들.
그러다 방 한구석에서 무당벌레와 다시 만난 그 날 아침은 이른 추위가 찾아온 날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는데 얌전히 행거 아래 죽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등껍질을 만져보았다. 꽤 단단한 질감으로 기억했는데 터무니없이 얇았다. 어릴 때 이름까지 붙여준 무당벌레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뭐였더라. 유난히 오래 나와 놀아주다 간 무당벌레들에게는 특별히 이름을 붙여주었었다. 지금은 다 잊은 그 이름들.
나는 문득 망연해져 조문 대신 한 편의 시를 끄적거려 보는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 오랜만에 띄워 보는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