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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May 23. 2024

낭만 2 ξ 15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기

분주한 아침이다. 기상과 동시에 아이의 등원 준비가 시작되는데, 내 몸이 아닌 아이의 몸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면 양치해 줄 때 간혹 아이의 잇몸이나 볼을 찌르는 일이다. 내 입이 아니라 감이 떨어져 실수할 때가 있다. 내 입에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긴 하다. 옷을 고르는 취향도 마찬가지다. 나는 편한 옷을 선호하지만, 아이는 공주 원피스를 원한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에 맞춰 준비하고 준비하다 보면 오늘도 시간 틈에 끼어버린다. 매일이 도전이다. ‘아, 오늘은 시작이 나쁘지 않았는데..’ 준비 과정을 복기하며 시간을 확인하는데 아이가 외친다.


 “엄마, 비행기!”


창밖으로 비행기가 떴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려고 시간 틈에 멈춰 선다. 부지런을 떤 시간이 뜬구름처럼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서 있다가 “어서 나가자”며 아이의 손을 잡는다. 

마침내 현관을 나서면 1부 준비가 끝난다. 2부 여정도 만만치 않은데, 혼자서는 7분이면 갈 거리를 2배의 시간을 들여 간다. 보폭의 차이, 속도의 차이를 제외하고도 아이는 이것저것 봐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눈부신 봄날에는 주변에 눈길을 주기 좋다. 

15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 등원 전쟁은 잊힌다. 매일 걷는, 같은 길이지만 우리는 어제와는 조금씩 달라진 이야기를 한다.


“이 꽃 어제보다 더 핀 것 같은데?”
“저기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어!”

“이 민들레는 하얘졌다. 불어도 돼?”


대화 사이에 “어서 와, 빨리 가자.”가 추임새로 끼어들긴 하지만 대체로 다정한 무드가 유지된다. 아이는 자신의 눈높이에 걸리는 작고 낮은 곳에 관심을 주었다. 개미, 떨어진 나뭇가지, 마른 낙엽, 피지 않은 꽃봉오리, 꽃의 색깔들.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나도 작은 것을 자꾸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했다.


ν 진달래인 줄 알았던 꽃이 알고 보니 철쭉이었다는 것,
ν 늦게 틔운 나뭇잎은 더 여린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 새것처럼 반들반들 티가 난다.
ν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높은 곳에서 떨어진 잎이 달린 나뭇가지는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 늘 보던 초록잎과 같을지라도.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맞춰주는 대화가 아니라, 정말 흥미로워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른과 만나 15분내내 나뭇잎의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누가 받아줄까. 어쩌면 아이는 내 시시콜콜한 관찰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느 날은 ‘날씨가 서늘해서 꽃이 시들었다’고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이 꽃의 계절이 지나서 그런 것’이라고 위로해 줬다.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핀다고. 그러니까 네가 작년에 5살이었고, 5살의 시간이 지나서 6살이 된 거랑 비슷하다고 말해줬다. 그 끝에 나는 우리의 계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아이는 나의 영감(靈感)이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는 이어진다. 네가 어린이집에서 재미있었는지, 그동안 나는 무얼 했는지. 그리고 아침에 못다 한 관찰을 마저하며 오다가 놀이터로 쏙 들어간다. 아침에는 비어있던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개미, 떨어진 나뭇가지, 마른 낙엽, 꽃봉오리, 꽃의 색깔 속에 뒤섞여 논다. 

홀로 아이를 살피며 관찰을 이어간다. 커다란 미끄럼틀과 시소 사이에서 작은 아이를 들여다본다. 잘 놀고 있는지, 위험은 없는지, 날 찾을 때 바로 가기 위해 주변에 서 있는다. 그러다 잠시 놀이터 입구로 걸어갔을 때 아이가 부른다.


“엄마, 어디가?”


아이도 나를 살피고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너’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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