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사겸사
“파인애플 나누실 분?”
“저요. 1팩 할게요.”
익명의 동네 주민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이 울린다. 누가 마트에서 파인애플을 2 상자 사 왔고, 나는 그중 1팩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집으로 간다. 빈 쇼핑백을 들고 낯선 방향으로 걷는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는 모양은 같지만 낯선 엘리베이터를 탄다. ‘같이 탄 사람도 혹시 파인애플을 사러 가는 걸까?’ 흘긋 봤는데 다른 층을 누른다. 35층. 우리 집보다 2배나 높은 곳에 있는 집의 창밖 풍경은 어떨지, 사방이 꽉 막힌 엘리베이터에서 상상해 본다. 아주 높은 곳에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아찔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내렸더니 현관문도 열려있다. 텅 빈 현관 앞에 내놓은 파인애플을 찾으러 갔는데 뜻밖에 사람도 나와 있었다. 방금 얼굴을 알게 된 사람과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파인애플을”
갑작스러운 만남에 말이 여유 없이 따라붙다가 멈춘다. 서툰 인사가 끝나자 유모차 위에 놓인 파인애플이 보였다.
“쇼핑백을 가져왔는데, 박스채로 가져갈까요?”
“네, 안녕히 가세요.”
파인애플 1팩이 담긴 작은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인사한다. 현관문이 닫혔다. 그제야 내가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고맙다는 말은 또 해도 좋다는 생각에 1층에 도착해 메시지를 보낸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먹을게요.”
돌아오는 길에 벤치에 앉아 여름 같은 봄볕을 쬔다. 서늘한 파인애플이 신경 쓰여 팩을 들어 주의사항을 읽는다. ‘반드시 냉장보관 하시고’
그래, 그래야겠지. 파인애플만 아니면 벤치에 좀 앉아있고 싶었다. 뜨겁지만 모처럼 맑은 날씨였다. 일어날까 고민하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얼굴 볼 겸 나가봤네요.”
얼굴 볼 겸. 겸은 ‘동시에 함께 한다’는 뜻인데 과일도 내놓고, 그 과일을 사러 온 사람의 얼굴도 볼 겸 문을 열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어 반가웠다. 그리고 파인애플에 대한 마음이 좀 달라졌다. 그저 ‘돈을 주고 과일을 샀다’에서 ‘마트에 다녀온 누군가 덕분에 편하게 과일을 사게 되어 고맙다.’로 바뀌었다. 상대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대상이 확실해지니 마음도 따라간다.
사람들은 ‘겸’, ‘겸사겸사’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지만, 이건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전혀 다른 장소, 인물들과 함께하는 두 가지 이상의 일정이라면 체계적인 계획하에 가능하다. 그들을 잘 이어 붙일 수 있는 시간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겸’ 사이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중요한 것이 앞에 오기도 하고, 뒤에 오기도 한다. 그건 말하는 사람만 알 수 있다. ‘겸사겸사’는 무심해 보이지만,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운 말이다. 이것저것 하면서 ‘요것’까지 돌봐주는 느낌이다.
햇살 아래 몸을 데우며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다시 파인애플 주의 사항이 떠올랐다.
‘반드시 냉장보관 하시고 실온에 둘 때는 직사광선을 피해서’
어쩐지 서늘하던 파인애플 팩이 좀 미지근해진 것 같다. 광선이 내리쬐는 벤치에서 얼른 일어난다.
‘그래, 파인애플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시 나오자.’
집으로 가면서 생각한다.
‘내가 다시 나올까?’
신발 벗고 양말 벗으면 그대로 집에 눌어붙고 싶을 텐데. 그래도 일단 가야 되니까 가자.
파인애플을 냉장고에 넣어둘 겸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