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공간

by 해니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어?”

“너? 음, 일단 오후인데, 아마 점심하고 저녁 사이 그 언저리에 병원 사람들 덜 바쁠 때쯤?”

“그게 뭐야. 정확하지가 않잖아요.”


나는 내가 태어난 시를 모른다. 초산이라 정신없던 엄마는 대략 ‘사람들 안 불편할 때’ 정도로 딸의 탄생 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록된 출산 노트 같은 것도 없었다. 일전에 한번 물어봤을 때 숙희 씨는 자기 다운 기준으로 내가 세상에 나온 시간을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떠난 시각도 그랬다. 가족 모두가 점심을 먹고 늦지 않게 도착한 시간, 병원 사람들도 급한 환자 없이 여유가 있었고 하늘마저 너그럽게 맑고 파랗던 날이었다. 마치 ‘가기 좋은 때’를 미리 알고 있었던 마냥, 엄마는 그렇게 조용히 채비를 차렸다. 마침내 긴 소풍을 떠나는 숙희 씨에게 우리는 즐겨 입던 옷을 입혀드렸고, 앞으로 다소곳이 모은 양손에 엄마가 예쁘게 떠 둔 수세미 몇 개를 쥐어드렸다.


“김숙희 트레이드 마크인데 같이 가야지.”


고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가족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간단하게 짐을 챙겨 도착한 장례식에서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의 사진을 보았다. 경황이 없어 영정사진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대체 언제 준비한 사진인거지? 사진 속 숙희 씨는 정돈된 피부, 또랑또랑한 눈빛과 야무지게 앙다문 입술을 갖추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한순간 무너졌다.


“우리 몰래 영정사진을 준비해 놓은 거야? 말이라도 하지! 왜 혼자 가서 찍고 와. 왜!”


가닿을 곳이 없어도 혹, 들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찍고 왔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다 못해 구겨지듯 아팠다. 숙희 씨 특유의 그 독립적인 성격이 어디 가겠냐만은. 아무도 몰랐던 영정사진은 아직 의식이 있던 엄마가 장롱 어딘가에 있으니 꺼내 쓰라고 아빠에게 일러둔 것이었다고 했다. 야속한 사람. 그냥 자식들한테라도 같이 가달라고 하지.


아빠는 장례식장에서 가장 큰 호실을 엄마와의 작별의 공간으로 정했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가는 길이라도 호사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나 보다. 드넓은 17호를 소식을 들은 친지들과 지인들이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속속 방문해 주시는 손님들을 보면서 그동안 부모님이 쌓아온 인덕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구심점과 같은 존재였다. 판단력이 빠르고 부지런하고 현명했으며, 차가워 보이는 인상 뒤에 따듯한 베풂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가족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겨 온 엄마는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도 널리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런 숙희 씨에게 많은 이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다녀본 장례식장에서의 상주와 그 가족들의 모습은 슬프지만 그래도 엄숙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었는데, 엄마를 보내는 내 모습은 울보 그 자체였다. 빈소에 온 친구들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물밀듯 차오르는 눈물이 주체가 안 됐다. 아마 엄마는 영정사진 뒤에서 혀를 끌끌 차고 계셨을 거다. ‘고만 좀 울어라. 누가 울순이 아니랄까 봐.’ 하면서 말이다. 엄마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도 10년이고, 언젠가는 보내드릴 때가 오겠지 막연히 생각해 온지도 오래인데 내 눈물은 예고 없던 이별처럼 마구 쏟아졌다. 엄마와의 헤어짐에 ‘준비’가 어디 있겠는가. 눈물은, 닥쳐온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3일간 머물렀던 장례식장을 떠나 숙희 씨를 ‘정말로’ 보내드리기 전, 아빠와 나 그리고 동생 셋이서 빈소 앞에 나란히 손을 잡고 서서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울먹이긴 했지만 울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말했다.


“엄마, 우리 셋 잘해나갈게요. 지켜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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