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을 자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가만히 누워있는 몸이 삭지 않도록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였다. 엄마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낯선 무의 감각이 서글프게 밀려왔다. 평소라면 내가 알아서 한다며 손도 못 대게 했을 터인데. 아이스께끼(이전 화에서 이야기한 ‘물 묻힌 가제를 얼린 막대’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를 더 만들 필요도 없어졌다. 그 어떤 신기한 아이디어나 발명도 찾는 이가 없어지면 쓸모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산적인 활동을 멈추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깨어나주기를.
잠이 든 건지, 약물의 파도에 허우적대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숙희 씨와 우리 가족들의 지인과 친지들이 소식을 듣고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잠이 들기 전의 엄마를 보고 갔다가 며칠 뒤 다시 온 엄마의 지인들은 그 사이의 변화에 말을 잇지 못했다. 힘은 없었지만 그래도 눈도 마주치고 대화도 했었건만, 미동 없이 숨만 쉬고 있는 숙희 씨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미국에서 날아온 큰외삼촌 역시 갈 곳 잃은 눈빛으로 하염없이 동생을 바라봤다.
“숙희야, 김숙희! 눈 좀 떠 봐......”
애타게 불러도 엄마는 꼼짝도 안 했다. 수년간 이어졌던 잠잘 때 내는 신음은 가느다래졌고 몇 달간 괴롭던 기침소리는 아예 나지 않았다. 처음에 속상하게만 들렸던 끙끙대는 소리는 어느새 엄마의 깊은 잠을 알려주는 잣대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미약해지다니, 고요한 슬픔이 병실에 안개처럼 드리워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반응은 약해도 숙희 씨의 귀는 분명 열려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애수에 잠겨있는 대신 엄마와의 즐겁고 소중한 추억들을 나누며 밀려오는 착잡한 감정을 물리쳤다.
“숙희랑 나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인데 어느 날 와서 얘기하는 거야. ‘언니, 나랑 되게 비슷한 사람이 있어!’라고. 그때 그 사람이 네 아빠였다니까.”
“헉, 엄마가 아빠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었다구요? 맨날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투닥거렸는데! 아니, 엄마 그랬었어? 완전 몰랐네~”
이런 재미있는 얘기들이 있었으면 진즉 건강할 때 좀 들려주지. 하긴 엄마 자존심에 퍽이나 얘기했지 싶다. 물어보고 싶은 게 여전히 많은데, 차마 꺼내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대답을 들려줘야 할 엄마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숙희 씨의 활력 징후는 점점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점점 떨어졌지만 호스피스에 들어오기 전 작성한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 대로 승압제와 같은 회생을 위한 의료 행위를 취할 수 없었다. 작은 손사래만으로도 사라질듯한 잔불의 상태가 된 엄마를, 우리는 보낼 준비를 했다. 엄마를 어떤 식으로 어디에 모실 지 의견을 나누었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딸인 내가 자주 오갈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결론하에 집에서 멀지 않은 추모공원에 가서 살펴보고 계약을 했다. 집에서는 엄마가 즐겨 입었던 옷과 가지런히 예쁘게 떠놓은 수세미를 종류별로 몇 가지 챙겨 왔다. 시댁에서는 손녀를 봐주시기 위해 달려오셨다.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를 뵈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울지 마라.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이렇게 울고 있으면 안 되지. 그럼, 엄마가 슬퍼할 테니 그만 울어야지.
하루 정도 남은 여명을 주치의로부터 듣고 지인과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들 두 팀이 인사를 왔다. 고등학교 동창 세 분과 직장 동료 친구 두 분이 숙희 씨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아파서 고생만 하다 간다며 이제 평안해지라고 손을 잡고 마지막 말을 건넨 친구분들은 임종은 가족들의 자리라며 쉬이 떨어지지 않았을 발길을 옮겼다. 40여 년을 함께 한 벗을 보내는 마음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엄마도 분명 마음속으로 화답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와줘서 고마웠다고.
어느새 숙희 씨의 곁은 가족들로 꽉 차있었다. 아빠와 남동생, 나의 남편 그리고 고모와 작은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큰외삼촌과 작은 외삼촌, 숙모 그리고 조카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듣고 있을 엄마를 위해 각자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못...... 못난 아들 이렇게 키워줘서 고마워요 엄마 엉엉.”
“니가 못나긴 뭐가 못나! 엄마가 널 얼마나 이뻐했는데. 이렇게 잘 낳아줬구만. 엄마 속상할라.”
울며 이야기하는 동생을 나무라며 나 역시 엄마에게 인사했다.
“엄마 다음 생에는 꼭 나한테 태어나. 내 딸로 오면 엄청 엄청 잘해줄 거야. 그러니까 꼭 와야 해, 꼭 와. 알았지?”
숙희 씨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오글거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고 분명 뭐라 했겠지만, 난 속에 품고 있던 말을 터뜨렸다. 이번 생보다도 더 예쁨 받고 더 사랑받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다음 생이 엄마에게 주어졌으면 했다. 그저 아까웠다. 암으로 얼룩진 10년의 시간이, 짧고 고되었던 김숙희란 사람의 60 인생이.
모두의 크고 작은 울음이 병실을 울리는 동안, 나는 엄마의 생의 마지막 움직임을 바라봤다. 앙상한 목덜미 한 구석에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심박이 보였다. 저게 멈춘다는 건...... 엄마와의 안녕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의 인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작은 고동은 비로소 안식에 들었다. 2019년 12월 18일 오후 14시 53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