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의 은행 같다는 인상
#애프터 치앙마이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려는 계획이 엎어졌다.
내가 졸업한 대학교의 심리학과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가 있어서 그곳에 다녀보려고 했던 참이다. 나와 잘 맞는 상담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떤 곳을 가야 할까 고민 중이었다. 나는 내가 나온 대학교의 심리학과 수업을 부전공이 가능할 만큼 많이 들었어서 그 학과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부전공은 마지막 3학점을 못 채워서 신청 못했는데, 그 3학점은 심리통계 수업이다. 나는 수학을 무척 싫어한다.)
심리학과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에는 뭔가 심리학을 연구하는 고단수의 선생님들이 모여계실 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 상담을 신청했는데 첫 상담에서 만난 분은 예상과는 달리 앳된 모습의 석사 학생 상담사님이었다.
사전에 제출한 설문을 바탕으로 50분 정도를 대화하다가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나보다 족히 15살은 어릴 것 같은 사람 앞에서 울어버린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복잡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차마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선택을 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그래서 '왜인지 이곳에서 상담을 오래 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나의 케이스에 대해 심리학과 교수, 석박사 학생들이 모여 케이스 분석을 한 결과 경험이 더 많은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만 첫 상담에서 MMPI2, TCI, 문장완성검사를 실시했기에 그 검사에 대한 해석을 듣기 위해 한번 더 센터를 찾았다.
센터로 가는 길. 내가 졸업했던 대학교의 교정을 걸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새로운 시설이 생기기는 했지만 10여 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에 반해 나는 거의 초주검이 다 된 상태로 힘겹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러 다니는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15년이 되어 간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릴 지도, 이런 상태가 될 지도 꿈에도 몰랐다.
아예 지쳐서 대체 왜 살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하는 상태라니.
이런 생각을 하며 센터에 들어서니 첫 상담에서 나와 대화를 나눴던, 앳된 표정의 상담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을 이어 나가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 뭐랄까, 매우 미안해하며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MMPI2, TCI, 문장완성검사는 심리상담을 하면 주로 받는 검사인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 검사라서 새로울 것은 없었다. 어색해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나는 검사 결과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면서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검사 결과는 이전과 비슷했다.
불안과 우울 점수가 매우 높았고 스스로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생각한 나머지 나 자신을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도 비슷했다.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일을 하는 내가 뭐가 나태하고 게으르단 말인가. 피식, 속으로 웃음이 났다.
MMPI2, TCI 검사 결과에 대한 대화를 마치고 문장완성검사를 함께 보면서 상담사 선생님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에 이르렀는데, 그러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송송당님은 파산 직전의 은행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타인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퍼주고 이제 자신이 쓸 것은 거의 남지 않아 보였어요."
와, 최근 몇 년 간 들어본 비유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비유였다.
파산 직전의 은행이라니.
그녀가 좋은 상담사가 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부모님이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동료가 되었건 타인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쓴 나머지 나 자신을 아끼지는 못한다. 그나마 자신을 아끼는 방법은 타인과의 교류를 단절하는 방법뿐이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을 지킬 방법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타인의 기분과 감정, 때로는 숨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장환경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것이 매우 싫었다.
무엇이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있을까. 나는 여전히 타인에 민감히 반응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타인, 특히 권력자(가부장적인 사람)의 존재나 반응은 완전히 개무시해 버리는 경향도 함께 보인다.
나의 성격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너무 많아서,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식으로 건 부모님과의 관계를 해결할 필요성과 거절하는 방법 연습하기, 싫은 상황에 직면해 보기 같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조심스레 권유해 주었다. 첫 상담에서는 차마 아무런 조언도 하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계속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있어서 자신이 그런 사람을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까.
그녀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하려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확실히 그녀가 경험한 삶이 아직은 나보다는 훨씬 짧아서 나에게 줄 수 있는 도움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 여기서 상담을 종료하는 결정은 매우 합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이다.
나는 아마 이날의 상담시간을 꽤나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타인을 돕는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인, 어쩌면 병아리 같은 느낌을 주는 어린 여성이 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준 이 시간을.
언젠가 멋진 닭(?)으로 자라난 그녀와 다시 조우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때는 또 내가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어서 중년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 아마도 상담이라는 상황에서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미래의 그녀와 한 번 즈음은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파산 직전의 은행 같은 나지만 나는 이렇게 나를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의 타인을 만나면 은행에 예금을 다시 적립하고는 한다.
글 쓰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녀는 나에게 글을 읽어볼 수 있겠냐 물었지만 나는 내 글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해 끝내 브런치 주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녀가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해서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에게 꽤나 좋은 인상과 도움을 받았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