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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Aug 12. 2019

월급날, 남편이 낯선 여자에게 돈을 부쳤다

애가 넷쯤였을 때였다.

애많은이피디의 월급날. 통장에 월급이 얼마나 들어왔나, 계좌를 열어봤는데.

어라. 이 여자 누구? 낯선 이름이 찍혔다.

남편은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정미기'란 여자에게 105만원을 송금했다.


모든 아내들이 그러하듯, 통장에 세기의 여배우 이름이 찍힌들

'세상 남자가 다 그래도 내 남편은 안그래'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그러다 발등 찍히는 줄도 모르고) 나역시, 아무런 의심없이

애많은 이피디에게 농반 진반? 아니, 농8진2 정도의 어감으로 메신저를 날렸다.

(당시엔 톡이 없었다.)

"어이. 정미기가 누군데, 나도 안스친 니월급이 고년한테 먼저 갔노?"


애많은이피디의 신속한 답변이 메신저로 날라왔고.

그의 답변에, 나는 격노했다.

애많은김자까, 내가 누군가?

욱쟁이 다혈질 대문자 O형 아니던가?

한가하고 우아하고 교양있게,

메신저에 활자 따위나 두드려댈 상황이 아녔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야!!!!!!!!!!!!!!!!!!!!!!!!!!!!!!!!!!!!!!!!!!!!!당장 차로 나와"


그리하여, 그는 신관에서 나는 본관에서 출발해, 우린 주차장 차에서 접선했다.


참고로 '정미기'가 누구냐는 나의 메신저 질문에, 당시 애많은이피디는

딱 두마디 대꾸를 했다.

'정미기' 고년의 실체와

"카드는 펑크내면 되지"




사건은 당시의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입자가 들고나며, 2천만원의 여윳돈이 생겼다.

아시다시피 전세금이 뭔가? 2년후에 갚아야 하는 이자없는 빚 아니겠는가?

여윳돈은 아녔지만, 그럼에도 그 중 절반인 천만원은 양가 부모님을 위해 쓰기로 했다.

애많은김자까가 욱하는 성질 탓에 못된 이미지는 있으나,

셀프 칭찬하자면 도리라던가 잔정이라던가 인정이라던가

이런 건 차고 넘치다 못해, 흘러 넘치는구먼.흠.흠


여하튼 천만원을 반띵해서 500은 울엄마 김여사 차바꾸는데 보탰고,

나머지 반띵은 합천으로 귀향하신 시부모님 댁에 야외데크를 만들어 드렸다.


그땐 아이가 넷. 맞벌이라도 월급쟁이 수입과 저축이야

유리지갑같이 뻔한 것 아니겠는가?

단번에 천만원 지출은 우리 부부에겐 적잖은 부담이었지만,

간만에 양가 부모님을 위한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했다.

누가? 내가! 순전히 나의 제안과 내 뜻만으로, 촉발된 지출이었다.

(나의 이런 생색을 백번공감해야 잠시 뒤 빡침 상황을 공감할 수 있다.)


데크값 500만원을 지출하고 일주일 뒤.

남편은 평일에 휴가를 내서, 아이들만 데리고 콩타작을 도와드리러, 합천 시댁으로 내려갔다.

나와 동행하지 않은 귀향길은 결혼해서 처음이었다.

(그때 이씨들만 내려보내는 게 아니었다.)


콩타작을 마치고 귀경길에 이피디가 전화를 했다.

"올라가는 중"

-어 조심해서 와

"근데 엄마가 쌀 타작하는 데 매번 기계 빌려서 하는 거 불편하다고, 하나 있음 하시더라"

-............

"그거 사줬으면 하시더라고"

갖잖아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일주일 전 야외데크를 해드렸단 말이다. 나로선 큰맘 먹고.

통장에 500만원 송금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뭐?

한마디를 하려다 꾹 참은 건. 그럼에도 시부모님의 일이고, 말을 꺼내자면 비난조가 나올듯 하여,

먼길 운전해 서울까지 오는데 괜시리 맘상할 듯 하여, 입을 다물었다.

당장 싸울 일도 아녔다. 이미 가을걷이가 끝났으니, 내년에 추수께나 다시 꺼낼 얘기였다.

당시엔 옹심도 났지만, 내 성격에 또 투덜대다 사드리게 될 가능성이 9할이고, 일단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뭣보다 나에겐 500만원 지출을 잊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월급날 남편이 돈을 부친 거다. 낯선 여자이름 '정미기'에게!!


 


바로, 그거였던 거다.

정미기는 누꼬?

"쌀 도정하는 기계"

-저번달 카드 많이 써서, 펑크날까 말깐데, 그래서 그 돈을 부쳤다고?

"카드 펑크내지 뭐"

"야!!!!!!!!!!!!!!!!!!!!!!!!!!!!!!!!!!!!!!! 당장 나와"


이렇게 된 상황이었다.


그날 우리 차는, 나의 고함과 분노의 포효로, 옵션에도 없었던 썬루프가 자체 뚫릴 지경이었다.

"자...따져보자. 작년에 집짓고 싱크대 붙박이 식탁 티비장 누가 해줬냐? 어무니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 학비 2년간 누가 댔냐? 내가 댔고! 환갑때, 경주이씨 삼형제가 동남아시아로 여행보내드리자고 했을때, 쫌 더 보태서 호주 여행보내드린 거? 그거 누구야? 김해김씨 내가 했냐? 경주이씨 삼형제가 했냐?"

"요보"

"이번에 데크 누가 해주자 했냐?"

"요보가"

"근데!!!!!!!!!!!!!!!!!!!!!!!!!!!!!!!!!!!!!! 누구 맘대로 내 동의없이 돈을 보내?"

"내가 얘기했는데..."

"얘기했지 내가 그러라고 했어? 뭐어? 카드 펑크내면 되지?

본격 농사를 지으시는 것도 아니고. 뭣보다 이미 추수 끝났고, 사도 내년에 사면 되지.

그게 카드 펑크내서 사다가 창고에 1년 묵힐 일이야? 정미기가 묵은지냐? 그리고, 뭣보다 지금 내 주머니 사정보다 어무니가 낫거든."

"......"

"이제 경주이씨 집안일은 아무것도 아닐테니, 혼자 다 할래?"

"아뇨"

"앞으로, 시댁으로 가는 돈은 십원 한장이라도 내 이름으로 보낸다. 알았나?"

"눼"


주머니 돈이 쌈지돈인데, 누구 이름으로 보낸들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흔한 고부갈등, 그 사이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것 중 하나가.

남편이 아내 몰래 하는 시댁일이다.

며느리가 야박해서 아들이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고,

반대로 시어머니가 해도 너무한 요구를 아들에게 해서 불화를 겪는 것도 봤다.

시댁으로든 친정으로든 모든 금전의 이동 상황은 부부가 공유해야 한다.


남편은 그날 내 앞에서 어머니께 전화했다. 엄마 돈 받았나? 며느리가 사준거다. 잘쓰래이~~


사실, 내 통장에 들어온 내 원고료를 시어머니께 보내드린다 한들.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보내준 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 이름으로 보내도 그 돈은 아들이 보낸 돈이 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며느리 이름으로 보낸 돈의 의미'는 '아들며느리가 공유하지 않은 일은 없음' 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십원짜리 하나도 내 이름으로 송금했다.

자꾸 며느리 몰래 아내 몰래, 아들과 어머니의 전선이 구축되면.

단언컨데 불행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친정 처가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아는 동생이 남편이 자기 몰래 어머니께 돈을 보낸다며 대판 싸우고 중재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 동생의 남편은 끝까지 잡아뗐지만,

나에겐 원래 보내드리는 돈 20만원 말고. 얼마쯤 더 보내드린다고 고백했다.

시어머니의 청상과부가 돼, 남매를 어렵게 키웠다. 노후대책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사연이다.


난 그 동생에게 물었다.

"얼마보내니?

"20"

"너희 시어머니 수입은 있으시고?"

"없어요."

"재산은?"

"없어요"

"그런데? 너는 20만원 가지고. 아파트 관리비내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내고, 쌀사먹고 할 수 있어?"

"아뇨"

"근데? 너 성당에 한달에 얼마내니? 헌금?"

"15만원 20만원?"

"하느님이 오냐 기쁘다 하실 것 같냐? 내가 하느님이라면, 나는 됐으니 시어머니 갖다드리라고 할 것 같다.

너 이번에 가족끼리 해외여행다녀왔자나. 얼마들었냐? 몇백 들었지? 어쩌라고? 니 시어머닌 어쩌라고? 그리고, 엄마야 죽든말든 마누라랑 새끼들만 챙기는 남편? 난 정떨어질 것 같은데? 그런 남자 매력없잖아.

야. 40만원 보내드려."


때가 되면, 부모와 자식이 독립해서 살아야 하는 게 맞지만, 여건이 안되면 어쩌겠는가?

없어도 쪼개서 나눠쓰며, 일단 살기는 살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지 않겠는가?


다만, 아내나 남편, 시부모님 장인장모 역시 선은 넘지 말아야 하고.

모든 일은 부부가 공유하고 공감해야 함은 물론이란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웬수같은 정미기.

그 덕에 시부모님은 해마다 건강한 쌀, 건강하게 도정해서 보내주시니,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여하튼, 정미기는 괘씸했었다. ㅎㅎ


이런 글을 올리면, 애많은김자까의 시부모님이 부당하게 뭔가 자꾸 요구하시는 것 같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아마도 아들에게 정미기를 사달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거다. (사주면 좋겠지만의 뉘앙스는 풍겼을지라도) 그렇게 말씀하실 분들이 아니다.

무엇보다 평소 우리가 보태드린 것 보다 받은 게 많으니(유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고마움을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아이 다섯을 낳고 20년을 살고 보니, 부부가 공유하지 않은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긴긴 글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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