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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Oct 29. 2020

돌고래에 의미를 붙이는 일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열다섯 번째 질문 -

시나리오 계약금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괌 여행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이었다. 벌써 작년이라니 믿을 수 없지만, 작년 6월에 다녀온 괌 여행은 정말 행복했다. 가족 모두와 함께한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전의 해외여행은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없어 쪼개서 다녀왔었는데, 왠지 이때가 아니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가 터져 버리다니...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나는 세 자매의 막내로,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꽤 난다. 내가 초등학생 때, 큰 언니가 대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엄마가 셋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진심이다. 우리 언니들은 꽤 능력자들인데, 늘 내가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학창 시절, 가장 눈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성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한 번도 언니들을 이겨본 적이 없다. 형 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찐인가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나는 늘 내가 해낸 일들만 말해서 그런 거지만, 우리 가족은 내게 넌 무엇이든 해내는 아이구나.’라고 말해줬다. 그게 언젠가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얼마나 나를 믿고서 하는 말인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내게 속상한 일이 있었지만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닌 듯 엄마에게 그 일을 에둘러 털어놓고 있던 날이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는 내게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눈물을 흘렸다. 나의 눈물, 어려움과 단점을 모두 보아준 사람들이 가족들이기에, 언제든 나의 버팀목이 되어줬다. 그래서 내가 모든 계획을 짜고, 모든 예산을 준비한 괌 여행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켜준 가족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엄청 행복한 기억을 남겼다.

이제 그 여행의 기억은 힘들 때마다 챙겨보는 추억이 되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늘 여행 영상을 제작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괌 여행 영상은 챙겨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영상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돌고래들이 수영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 속에 들리는 가족들의 목소리도 좋고, 돌고래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던 순간이라 더 인상적인 것 같기도 하며, 언젠가 그 영상을 다시 보며 돌고래들에게 의미를 붙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 중 돌고래를 보러 가는 오전에 스콜이 내려서 돌고래를 보지 못할까 걱정했던 날이었다. 가이드님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돌고래는 오전에 비가 오면 더 많이 등장한다고 말씀하셨었다.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돌고래는 어릴 적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순수와 영특함의 존재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매력적인 영물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단어들을 다 빼고, 돌고래는 내 친구가 될 수 있는 동물 같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하늘색 찰흙으로 돌고래 반지를 만들어 꼈었다. 그런 돌고래는 행운을 뜻하기도, 돌고래의 꼬리 모양의 액세서리를 선물하는 것은 '당신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네게는 그런 힘이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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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고래는 오전에 비가 오면 더 잘 나타나며, 파도의 흐름을 즐기는 동물이다. 그래서 크루즈가 더 큰 파도를 내면 신나서 춤추며 재롱을 선보인다. 그런 단순한 돌고래의 습관에 의미를 붙이게 된 것, 나에게도 응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비와 파도를 즐기는 돌고래처럼, 어떠한 막히는 방향이더라도 즐겨보자고 말이다.
(당시의 일기 중에서)     

그 당시 나에게는 돌고래에라도 의미를 붙였어야 했던 것 같다. 여행에 돌아오고 나서 계속 확정되는 것이 없이 계속 새로운 것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계속 그 돌고래를 떠올렸다. 행복했던 기억을. 비 온 뒤에 더 활기찬 돌고래를.

지금도 확정되는 것이 없이 계속 결정들이 지연되고 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괌 여행 영상을 봤다. 꼭 다시 그곳으로 떠나 돌고래를 한 번 더 마주하고 싶다.



오늘의 질문

Q. 여러분들의 든든한 지원군은?

A. 우선 저의 답) 가족입니다. 제가 흔들리고 잘 되지 않아도, 제가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얼른 돈을 많이 벌어서 다시 가족여행을 길게 떠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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