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s Jang Jul 20. 2021

눈에서 멀어지지 않기



수건에 자수로 번호가 적혀 있다. 여름이라 어쩔 수 없이 매일 빨래를 하다 보니 바짝 마른 수건은 항상 서랍장 맨 앞으로 오게 된다. 구석에 들어간 수건은 답답하겠다 싶을 만큼 거의 같은 숫자의 수건만 반복해서 사용 중이다.


읽다 만 책들은 그 위로 또다시 읽다만 책들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지금은 아래쪽에서 무게를 단단히 지탱하는 역할 중이다. 물론 책갈피를 끼워둔 게 무색할 만큼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옷들도 있었구나 하며 옷장을 뒤져서 겨우 찾아낸 옷들은 다시 고스란히 접혀 구석에서 아마 몇 년 동안 기억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올해는 꼭 한번 입어 봐야지!' 하지만 막상 옷을 입을 때가 되면 맨 앞에 나와 있는 익숙한 것들 혹은 새로 사서 맨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채 몇 주를 버티다 바뀐 계절을 맞이한다. 


일상의 즐거움, 여행에서의 추억들은 그때의 사진을 눈으로 봐야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면서 나쁜 기억도 아름답게 장식되고 마무리된다. 진부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상상력의 한계, 요즘에는 기억력의 한계가 아니었을까?라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이 쏠리지만 아무튼 보는 것의 영향력을 심리학적 관점에 맞춰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엄청난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혹여 마음에서 멀어질지도 모르니깐. 




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찍어놓고 한 번도 보지 않은 사진들 영상들 때문에 핸드폰 저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에 다 필요할 것 같아서, 나중에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찍어 두었는데 정리를 하려고 보니 그중 반은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개중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참 좋네 하면서 중요한 폴더에 옮겨둬야지 마음먹게 되는 것들도 있다. 



지금 눈 가까이 보이는 것들을 살펴본다. 필요하거나 중요하거나 아름답거나 혹은 어떤 습관에서건 거기 있어야 한다고 애초에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있다. 분명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는 것들 중에도 소중한 것 투성일 테지만.


가까이 두어야 할 것들의 존재, 그게 사물이든 기억이든 간에 자주 꺼내봐야겠다. 그렇게 눈에서 멀어지지 않게 해야겠다. 혹 마음에서 멀어질지도 모르니깐. 





















이전 08화 나만 아는 사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