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화 Apr 14. 2023

흩날리는 꽃들 속에서

내 시선이 머무는 저곳에서 웃고 있는 너를 상상해. 

휴대폰을 하늘을 향해 45도 각도로 올려 찍은듯한 동영상은 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이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작은 배경음악 삼아 30초 정도 계속된다. 



작년 이맘때 공원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구경을 나왔다가 엄마가 찍어서 동생에서 보낸 동영상은 동생 휴대폰 갤러리 앨범 하나에 하나뿐인 조카(내 아들)가 건조기에 빨래 넣는 사진과 함께 따로 보관되어 있다. 



얼마 전 배터리가 나간 동생의 휴대폰을 충전해서 갤러리의 흩날리는 벚꽃 동영상을 보았다. 엄마가 보낸 동영상을 다운로드해서 가족사진을 보관해 둔 앨범으로 따로 빼두는 동생을 상상했다. 카카오톡으로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었는데 가족 앨범에는 달랑 세 장의 사진과 하나의 동영상만이 있었다. 세 장은 조카 사진이고 하나의 동영상은 바로 그 벚꽃 동영상이었다. 그동안 보내준 그 많은 사진과 동영상 중에서도 두고두고 보려고 고르고 고른 것이었을까. 



다시 봄이 왔다. 

다시 4월이 왔다. 



올해 벚꽃은 작년 보다 더 일찍 만개했다. 4월이 채 되기 전에 흐드러지더니 4월이 되자마자 바람이 불면서 가지에서 떨어져 눈꽃처럼 흩날리기 시작했고, 이내 비가 내리면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 젖은 벚꽃잎들은 처연해 보였다. 



아직 꽃잎이 보송보송할 때 아이와 함께 꽃구경을 갔다. 코로나 시대가 이제 저물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거의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군데군데 KF94 마스크를 바르게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스크 착용은 이제 다시 '자유'의 영역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3년 전 연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3년을 꽉 채우고 난 후에나 다시 '예전'과 같은 일상을 누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2019년 중순부터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까지 동생이 하던 식당이 비로소 매출 흑자의 궤도에 들어섰다. 

"누나야, 이제 된 것 같다."

2018년 창업 후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서 텃세에 매출 적자에 힘들어하던 동생이었다. 그때 기쁨과 설렘과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주던 때가 아직도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적,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동이 모임이 통제되면서 힘들어하고, 가게를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 과정 동안 혼자 끙끙 앓으며 힘들어하다 지치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있고 기쁨에 가득했던 목소리가 마지막 날처럼 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로 변하기까지 혼자 어떤 것들을 감당했던걸까 생각하면 평생 미안하고 찢어질 가슴은 늘 처음처럼 미안하고 찢어진다. 



나뭇가지와 벚꽃 잎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특히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벚꽃나무를 배경으로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웃었다. 웃음소리는 보송보송한 벚꽃잎의 하얀색에서 파스텔 분홍색, 미세먼지 없이 쾌청했던 공기와 하늘의 티 없이 맑은 하늘색과 잘 어우러지는 깨끗한 노랑에서 파스텔 오렌지 빛깔처럼 느껴졌다. 



그날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 중에서 나만 웃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이렇게 다시 마스크를 벗게 되고, 카페든 식당이든 앉을자리 하나 없어서 계속 걸어야 하는 날이 다시 왔는데. 이런 날을 다시 보지 못하고, 이렇게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 너도 한 사람으로 섞이지 못하고 떠난 세상을 나는 기어이 홀로 마주하고 있기에 웃을 수 없었다. 이미 가버렸지만 그 청춘이 아쉬워서 같이 이런 시절을 맞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저렇게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는 꽃들 속에서 너도 같이 웃고 사진 찍으며 깔깔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이제 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일어난 일은 받아들여야 하기에 봄이 오고 나는 꽃을 보러 갔지만 마음속에서 울고 있는 아직 꽃을 봐도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함께 보지 못했지만 엄마가 동영상을 찍어서 동생에게 보내서라도 '함께' 보고 싶었던 그 벚꽃 동영상으로 우리는 그 벚꽃을 마지막으로 함께 보았다. 그 벚꽃 동영상을 찍었던 장소를 저만치 앞두고 걸으면서 나무 아래에서 웃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상상했다.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웃으며 서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나도 웃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흐르는 일은 마냥 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