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종종 네 소식이 궁금해.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잘 지낸다고는 못하겠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내 안에도 많은 말들이 있는데 꺼내서 담기엔 내가 아는 단어와 문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늘 마음속에서 빙빙 돌다가 더 깊은 곳으로 잠기는 것 같아.
요즘은 눈을 뜨면 그런 생각을 해.
'여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세상이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얻기도 했고 잃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 석 자가 있어. 나보다 먼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아이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 잘 굴러가더라. 사람 한 명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이 사라지는 게 얼마나 쉬운 건지 바라보면서 인생이 허무해졌어. 38년은 짧지 않은 세월인데 떠나보낸 자리에서는 '인생은 찰나'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죽는 걸 끝내 실행에 옮긴 아이는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쳤을까. 이렇게는 더 이상 살기 싫었을까. 그래서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던 거였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아야만 정말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더라. 죽음이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인생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잔인하고 거지 같고 자꾸 어디론가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계속 드는데도... 나는 살다는 본능을 직감했어. 어떻게든 살고 싶더라. 하고 싶은 것도 아직 많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어서 아직 나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데 죽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살았을 때 알아봐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책감으로 살면서 다만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죽는 게 이제 무섭지 않아 졌거든. 그저 내가 세상으로 소환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내 할 일을 다해놓고 홀가분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어. 무기력하고 인생의 의미가 사라진 느낌. 살아는 있지만 사는 것도 아닌. 오로지 한 가지 질문만 생각했어. 나는 이런데도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 사는 게 이렇게도 힘든데 모든 걸 끝내고 싶은데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의 대답.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고 내 마음속에 있는 동생한테도 해주고 싶은 말.
그 대답을 찾았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 그건 '죽음'이야.
'결국 언젠가 반드시 죽을 테니까'
지금 죽는 거나 그때 죽는 거나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죽는지가 다르다고 하겠어. 잘 죽어서 홀가분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갈 건지, 아니면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차서 죽을 건지.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쥐어짜서 이보다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살라고 하겠어. 정말 그랬다면 죽을 때 후회가 없을 테니까. 이 삶을 진심을 다해 살았기에 후련하게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지금껏 내 딴에는 치열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산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정말 내 모든 걸 다 쥐어짜 내서 완전히 연소해 본 적은 별로 없더라. 적당히, 이 정도면 치명타는 없겠는데 하는 정도까지만. 나는 인생에서 넘어져본 적이 별로 없어. 아니 없어.
내 동생은 많이 넘어져본 아이였어. 그야말로 자빠져서 나뒹굴었던 아이였어. 가진 건 몸뚱이 하나면서 겁 없이 세상에 덤비던 아이. 남들이 보면 정말 인생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실패했는데... 동생은 늘 도전하던 아이였어. 그래서 실패를 온몸으로 감당해 봤고. 난 그런 적이 없어. 그런 도전을 해본 적이 없어. 슬램덩크 정대만의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는 대사를 좋아했어. 바보같이 그래놓고 인생을 포기한 바보.
조금만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손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보여주는 겉모습이 아닌 진짜 너의 모습을 알아봐 주지 못해서 알아보려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이후의 세상은 다시는 그 이전의 세상과는 같아질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동생이 죽고 나서 내 안에서 뭔가가 같이 사라졌고, 내 안에 뭔가가 새롭게 생겨났어. 동생이 있음으로써 함께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동생을 담고 있는 방이 하나 생겨났어. 시간이 지나고 이 슬픔이 완전히 내 인생의 일부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 더 가끔씩 울테고, 더 자주 웃을 수도 있을 테지. 나는 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세상은 잊더라도 나는 잊을 수 없는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갈 거야. 마지막 순간에 그 마음으로 너무 외로웠을 테니까 동생에게 죽음은 구원이 아니었을까봐, 죽어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신 차리고 돌아보고서는 그래도 살아볼걸 하는 마음으로, 엄마랑 나한테 미안한 마음일까봐. 떠난 동생을 위로하고 기도하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매일매일 이야기해주고 있어.
살아있을 땐 너무 당연한 이름이어서 잊고 살았는데 이제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이 된 건, 늘 가슴에 사무치고 웃다가도 목놓아 울 수 있는 건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세상에서 사라졌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사람 목숨 질기다면 질긴 것도 맞고, 참 허망하다면 허망한 것도 맞는 것 같아. 인생 별거 없어졌어. 그냥 오늘 보고 싶은 사람 보고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하고, 웃고 감사하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 허무의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든 채워야겠어.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뭐가 되는지도 모르는 짧은 인생, 죽을 때 돌아보면 찰나의 시간일 테니까. 그러고 보면 모두 시한부 인생이니까.
결국 죽을 테니까. 결국 작별해야 하니까.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이 생의 나와도.
마음 속에서 맴도는 말이라서 빙빙 돌다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마음이라서 누구에게 보내야할지 모르는 편지가 되겠지만 그래도....
아니 그래서 고백할게. 난 이렇게 살고 있어. 지금 볼 수 없지만 널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있어. 널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