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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화 Jan 11. 2023

계절을 세다

계속 계절이 오고 간다. 


작년 봄에 이어 여름이 왔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에 이어 찾아온 겨울 속에 있다. 매번 새로이 찾아온 계절이 완연해질 때마다 나는 지나간 계절들을 뒤돌아봤다. 지나간 계절 속에 뭔가를 남겨두고 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작년 봄 속에 난 대체 뭘 남겨두고 온 걸까. 


동생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작년 4월 초, 흐드러진 벚꽃 잎이 눈꽃처럼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있다. 우리 동네 벚꽃 명소로 알려진 곳에서 엄마가 찍어서 동생에게 보낸 것이었는데 별도의 폴더에 자기가 아끼는 조카(내 아들) 사진 몇 장과 함께 담겨있었다. 그날 내가 입었던 동네 아줌마 패션, 동영상을 찍던 엄마의 모습, 우리가 나눴던 대화, 그리고 웃음소리들, 그 동영상에 담긴 모든 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동생은 사진첩에 담아둔 그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같은 4월이었는데... 


나는 지난 4월 속에 동생을 묻어두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 4월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계절이 하나 둘 바뀔 때마다 그 안에 묻어두고 나는 떠나온 기분이 들었던 걸까. 동생은 거기에 있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가 묻은 건 동생이 떠난 몸이었다. 동생이 이 생에 살던 집이었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던 물질로 이루어진 껍데기였다. 내가 부르면 대답하던 동생은 그곳에 있지 않다. 


다만 지난 4월 속에는 우리가 함께 살았던 인생이 있었다. 4월 전에는 모든 날이었고, 4월 이후에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함께 살았던 인생에서 멀어지고 있는 거다. 이제는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생이라서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인생에서 한 계절, 두 계절 멀어질수록 그 나날들이 있던 계절들을 뒤돌아본다. 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올 테고 다시 4월이 올 테지만 이 겨울이 지나고 올봄은 지나간 봄과는 완전히 다른 봄이다. 앞으로 맞이할 모든 봄이, 모든 4월이 그러할 테다. 


점점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나는 동생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동안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집으로 돌아올 것 같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동생은 이제 집에 오지 않는다. 동생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계절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그 사실이 내 현실로 점점 더 짙어져 간다. 언젠가 그냥 현실이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아득해져 있을 시간들.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라서 나는 막을 수 없는 계절의 오고 가는 길목의 귀퉁이에 몰래 숨어있는 중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아직 겨울이지만 나는 다가올 봄을 자주 생각한다. 지난봄부터 시작되었는데 다시 봄이 저만치서 다가온다. 이전 봄들과는 완전히 다른 첫 봄. 네가 없는 봄. 너와 함께 할 수 없는 봄. 


나는 두고 온 것이 없다. 우리가 함께 살던 인생을 지나 함께 살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데리고 다닌다. 나는 너랑 함께 산다. 내 마음속에 항상 함께 하는 너를 데리고 해를 넘겼다. 지나간 계절 어디엔가 너를 홀로 남겨두지 않았기에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신아. 우리 같이 살자.  




참, 올 해는 기록을 좀 많이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쓰고 있는 일기를 제외하고도 용도별 기록을 하려고 하니 다이어리가 한 8개 정도 된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 가족이 했던 말, 대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적는다. 아이와 놀면서 본모습 중에서 잊고 싶지 않은 것들도 적는다. 내 생각도 적는다. 이 기록은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내 동생에 대해 떠올리고 추억해보려고 해도 우리가 나눈 대화나 동생의 모습들 무엇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것들이 별로 없다. 어떤 해는 내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바빴던 시기였는데 그때 내 동생은 뭘 하고 살았는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때 같은 집에서 살았고 매일 얼굴을 마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었던 대화 한 대목조차 생각나는 게 없다. 그냥 이미지들뿐이다. 자라면서 보았던 모습들, 동생의 대표적인 이미지,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 같이 밥을 먹고 그랬던 모습들. 나는 앞으로 살면서 동생에 대한 뭘 기억하고 추억해야 하는 걸까. 오면 오고 나가면 나가는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었지 나는 나 사는 일만 중요했던 사람이었다. 숱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을 텐데. 집에 들어오는 너를 꽉 안아줄 수만 있다면. 같이 밥 한 번만 먹어볼 수 있다면. 너 걸어가는 뒷모습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돌아보니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에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지금부터라도 기록을 하기로 했다. 그 기록 속에는 동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문득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도 모두 기록해두려고 한다. 계절이 얼마나 왔다 가더라도 상관없이 기록이 나 대신 순간의 조각들을 보관해줄 테니까.      


하지만 다이어리 8개는 좀 많다. 이제 와서 줄이자니 너무 새해 초라서 꾸역꾸역 쓰고 있다. 일단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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