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49재를 치르고 나서 몇 주 뒤에 동생이 살던 집에 다녀왔다. 짐을 모두 정리하고 왔다. 5년 전 동생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는데 이곳에서 정착하고 싶다고 했던 말처럼 많은 살림 가재와 옷과 신발과 가전 가구들이 뿌리내리고 싶어 했던 동생의 결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동생이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 내가 사준 에어프라이어가 있었다. 부산에서 같이 살 때 엄마가 선물해준 컴퓨터 모니터를 싸가지고 가서 지금까지 쓰고 있었다. 옷장을 열어보니 깔끔하게 옷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여자 친구의 솜씨였겠지. 동생은 마구잡이로 옷을 쑤셔 넣는 스타일이어서 같이 살 때 동생 옷장은 주기적으로 새로 정리해야만 했다. 엄마가 사준 양복도 있고 입고 다닌 걸 본 적 있는 옷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옷들이 더 많았다. 편한 옷들, 자주 입는 옷들만 주야장천 입던 아이였다. 얘가 이런 옷도 입고 다니나 싶은 스타일의 옷들도 많았다. 그 옷들을 입고 있는 동생을 상상해봤다.
옷장 선반에는 작은 상자에 목이랑 어깨 뭉치면 마사지하라고 내가 보내준 편백나무 봉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전자기기들,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잘 정리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진앨범 하나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쳤는데 동생의 사진앨범이었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내 어린 시절 사진이 보관되어 있던 사진앨범은 전부 잃어버렸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오면서 동생 앨범 하나는 분명히 챙겨서 왔는데 언제인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동생이 가지고 있었구나. 낡고 닭아서 너덜너덜한 앨범이었는데 깨끗한 새 앨범에 가지런하게 정리해놨구나. 이것도 여자 친구 솜씨일까. 아기 때부터 유치원 시절까지의 동생 모습들. 그 시절 누나 껌딱지였던 동생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귀엽고 예쁜 내 동생. 웃는 모습이 천사 같은 내 동생. 사진을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평생 두고두고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작은 상자 속 서류 꾸러미와 작은 서랍 세트. 서류 꾸러미를 꺼내보니 부산에서 사업할 때 사업자 등록증과 사업체 도장, 첫 영수증, 통장을 너무 곱게 정리해서 보관해두고 있었다. 그때 그 일은 동생의 꿈이었다. 아니 현실이었으니까 현실로 이룬 동생의 꿈이었다. 힘들었지만 행복해했던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언젠가 다시 일어서서 그 일을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을까. 아니면 추억을 간직한 것이었을까. 자기 이름이 대표에 새겨진 명함과 증명서들을 거기까지 싸들고 가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관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있는 그때 사업과 관련된 서류들을 버리지 못하게 하더니...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게 자기한테 소중해서 그랬던 거였구나. 자기의 피 땀 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들이어서. 그건 버릴 수 없었다.
동생 짐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서류들 중에서 사업자등록증과 몇 가지 서류들을 챙겨 왔다. 그건 내가 정리해서 동생 유품으로 가지고 있기로 했다.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그동안 동생과 했던 대화들, 그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모습들로 유츄해봤을 때 동생에게 소중한 물건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내게도 소중하니까.
동생이 끝까지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이 무엇인지 안다. 동생이 꾸던 꿈이 무엇인지 안다. 꿈꾸는 동생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서류에 쓰여있는 동생의 글씨와 이름. 모든 흔적들.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계속 이어질 것 같기만 하다.
동생의 향기가 남아있던 옷도 신발도 이제는 없다. 마지막으로 옷을 보내기 전 동생을 안아보는 것처럼 옷을 끌어안았는데 아직까지 동생의 향기가 남아있었다. 향기를 간직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미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향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더 잊힐 일만 남았다.
동생이 38년을 살았는데 세상을 떠나고 나니 남은 건 서류 몇 가지와 사진뿐이다. 인생은 역시나 허망하다.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것도 동생이 꿈꾸던 것들,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