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문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진다.
인간이라는 본질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지금까지 경쟁하고, 스펙을 더 쌓고 남들보다 좀 더 잘 되기 위해 (어떤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사회 속에서 모두가 살아왔다.
남들의 인정에 좌지우지되고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면 우울증이나, 낮은 자존감으로 한없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한 개인이 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내가 타고난 능력의 한계치가 있다. 내가 못하는 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뜻한다. 내가 못하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만이 가진 것들에 대해 더 집중하고 관심 가져 보고 그것을 더 키우려고 해 보자.
앞으로 우리나라가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써 지금보다 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섞인 사회에서 살게 된다. 다른 나라 출신이기도 하고, 중간에 해외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거주지가 한 곳에 정해지지 않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각색의 배경의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 한국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사는 터전이 다르면, 사람의 생각이 그 거주지에 따라 바뀌게 되어 있다. 밟고 있는 땅의 토양질, 기운이 다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또한 만나왔던 상황들이 다르기 때문에 더 예측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 다문화 사회 안에서 우리는 적응을 하고 섞이며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땅을 바꿀 순 없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다 나를 맞추려면 나는 죽어날 것이다. 이 상황에 맞추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나의 본모습을 지킬 때 나답게 살 때,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수많은 현대인의 우울증, 낮은 자존감, 수많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다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뱁새가 황새 쫓아 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졌다는 말이 있듯이, 뱁새는 황새가 될 수가 없는데 기어이 되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뱁새는 자신만이 가진 사랑스럽고 귀여움을 모르고 있었다.
나다운 걸 찾는다는 것은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들어왔던 말이다.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있다.
2024년을 맞이하는 현재 이 말은 더 중요해진 본질이 되었다. 그동안 남들과 비교하며 발전한답시고 경쟁하면서 사느라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것을 망각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자. 기술과 발전의 혜택을 우리는 많이 받은 세대이다. 그렇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혜택도 있듯이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 기술은 충분히 발달했다. 오히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만들어진 그런 영화들도 많이 보지 않는가.
보통 영화들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컨테이전 Contagion"이라는 영화는 2011년에 나왔는데 코로나가 발생한 이유와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는 2019년 후-2020년 초에 발생했는데 말이다. 신기할 뿐이다. 꼭 예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에코를 외치고, 생태정의를 실천하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줄여야 할 때이다. 자연으로 인간으로 본질로 돌아감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인간도 나다움을 찾아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나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일뿐이고 나는 네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