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약소국의 설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보이고 있는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전 바이든 정부와는 외교 측면에선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다, 러-우 전쟁 종전을 위한 협상에선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다.
3월 1일에 있었던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정상회담은 마치 20세기 초 서구 열강과 식민지배를 당하는 약소국 정상이 만난 것처럼 일방적으로 젤렌스키를 무시하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트럼프는 계속 젤렌스키에게 "우크라이나는 아무런 카드가 없다"라며 미국이 하자는 데로 광물자원을 내놓고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약소국으로 설움을 당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보기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트라우마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실제 관련 기사 댓글엔 "핵무장을 하자"는 등 강대국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글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약소국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국가는 아니다. 국토 면적은 60만km2로 대한민국의 6배이고 프랑스나 스페인보다도 넓다. 인구도 4100만명 정도로 우리나라보다는 적지만 유럽에선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한다. 구 소련에 독립한 국가 중에선 러시아 다음으로 규모가 있는 나라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바로 붙어있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러시아와의 사이에 완충 국가가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전쟁과 극심한 피해, 미국으로부터의 엄청난 무시(?)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러-우 전쟁과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중재 방식을 보면서, 개인적으론 북한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분명 북한은 우리나라에게 심각한 안보 위협을 주고 군사적으론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적성국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선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슈퍼파워 국가와 국경을 직접 마주하지 않도록 완충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 러시아와 함께 의도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동해 바다로 직접 나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도 하고 있다.(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서해에서 어선 충돌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중국이 동해로 나오지 못하고 막혀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트럼프가 러시아의 푸틴과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편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혈맹관계가 된 북한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커질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중국에 경제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고 미국과도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이 북한과의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여론은 트럼프의 장삿속 외교를 비판하고,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 경향이 큰 듯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국익의 차원에서 본다면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얻을 것이 훨씬 많다. 러시아 시장에 재진출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많다.
트럼프와 푸틴 간의 밀착과 북한과 러시아의 혈맹, 미국의 중국 견제 등 앞으로 트럼프 4년간 요동칠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나라는 확실한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을 펴는 지도자가 나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