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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26. 2019

끔찍한 산부인과 의자

1983년 1월 26일 수요일


너무나, 정말 너무나 허리가 아프다. 

조퇴를 하고 5시 반쯤 들어와 계속 누워있는데도

배, 허리 등이 지독히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정말 힘이 들어 저녁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 것일까?      


1983년 1월 28일 금요일     


아,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 해괴망측한 폼이라니.      


간호사 지시대로 조그만 커튼 뒤로 가 

밑에를 모두 벗고 고무줄 치마를 입었다.  


올라가 앉으라는 의자가.... 햐.. 의자가...

등을 기대고 앉아 발끝을 하늘로 쳐드는...

하이고 수치스러운 그 폼이라니...     


"궁둥이를 쫌 더 내리세욧~"     


아이고~  부끄러워 조심조심 엉거주춤하는 

내게 쏘아붙이는 야멸찬 간호원 소리.     


천정으로 향해있는 수갑 같은 기다란 통에

발목을 끼워 넣고 궁둥이를 아래로 쑤욱 내리니

아주 부끄러운 폼이 된다. 


다리가 쩍 벌어질 수밖에 없는

아 괴상한 의자!!!     


어떻게 그렇게 쩍 다리를 벌리고

앉게 하는가?      


의자, 그 희한한 의자

그뿐인가. 


의사가 와서 무엇인가

그곳 깊숙이 넣는다. 아, 싫어.     


명동 성모병원 산부인과,  

내가 아기 엄마가 된단다. 


쿵쿵 쿵쿵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도 

들려준다. 신기하다.  

   

예정일이 8월 22일이란다.  


"어쩜, 계획한다고들 한 날짜가 

그래 그 모양이냐? " 


너무 더울 때라고 같이 간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시다.  

   

소변 검사비가  4,500원이나 들었다. 

그리고도 진료비 2,000원을 냈다.      


한일관 냉면은 정말 맛있다. 

바지런하고 항상 깨어있는 정신자세의 

멋진 와이프가 되고 싶다.           


1983년 2월 11일 금요일     


너무나 힘이 들다. 

다리가 많이 아프다.      

사는 게 정말 바쁘다. 


행복이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많이 바쁘다.      


배가 많이 고팠다. 

퇴근길 롯데백화점에 서서 

우선 고구마튀김 1개, 오징어 튀김 1개, 

그렇게 200원을 썼다.      


후라이드 치킨이 맛있겠다. 

월급날 그이랑 사 먹어야지. 

     

우선 가장 싼 비지를 400원어치 샀다.      

토마토가 진열대 자그만 소쿠리에 담겨 있다.

한 겨울에 토마토라니?

아, 그런데 너무나 먹고 싶다.      


"한 개도 팔아요?"

"네. "     


조그마한 것 1개를 고른다. 

세상에 300원이란다. 

아, 너무 비싸. 사지 말까?


그래도 너무 먹고 싶다.

그래도 너무 비싸잖아.

저 코딱지만 한 게 300원이라니...


아니, 오늘은 무리를 해서라도 

꼭 먹고 싶어.  그래도 너무 비싸 

아니야 먹을래...     


망설망설 몇 번을 돌고 돌다 

그 제일 작은 토마토 한 개를 결국 사고 만다.    

 

손으로 빡빡 문질러 조심스럽게 한입 문다.     


"아~  맛있어."     


비싸서 그런가.

한겨울 토마토가 귀해서 그런가.

한 입 한 입 아주 살살 녹는다. 


아.. 너무너무 맛있어.    

  

그리고도 내 머릿속엔 먹을 거뿐이다.

플라자호텔 케이크도 먹고 싶고,

딱딱한 불란서 빵도 먹고 싶다.       


1983년 2월 24일 목요일     


언제 그런 악한 마음이 내게 스며들었을까. 

그를 마구마구 괴롭혔다. 

결국 그는 설거지를 해주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어쩔 줄 몰라하며 달래주는 그에게 난

계속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쉬어대고

한바탕 울어버리고 했다.    

  

밥을 실컷 먹고도 식탁에 나가서 

다시 빵을 잘라 어그적 어그적 먹어댔다. 

심통으로.      


과연 나의 뱃속은 어찌 되었을꼬?      


그렇게 난 아주 못된 태도를 취했다.      

미안한 마음.


그럼에도 잘 달래주던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무럭무럭 일면서 

그가 마구 보고 싶어 진다.    

  

이게 바로 부부라는 건가 보다. 

조금만 화를 내고 헤어져도

너무 보고 싶고 사과하고 싶고

더욱 잘해주고 싶고 그렇다.  

    

그를 고치려 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그를 존중해주며

사는 거다.     

 

1983년 3월 2일 수요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산을 다 잃어버리고 유치원생용 쪼끄만 우산에 

둘이 가까스로 머리만 들이대고 출근버스를 향해 

뛰고 또 뛴다.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되도록이면 많이 많이 

꼭 꼭 붙어야만 했다.      


"음... 어디서 냄새가.... 킁킁 냄새가 몹시 나네.."     


연신 싱글벙글해가며 내가 

똥이랑 도시락이랑 함께 가방 속에 

넣고 가는 게 그리도 좋은지 자꾸자꾸 시비를 걸어온다. 

    

28일 정기진단 때였다. 대변검사를 해야 한단다.  

당장에 똥이 나올 리 없다. 그래서 회사에서 병원이 더  

가까운 그가 와이프 똥을 다음 날 전달하기로 하고 

일단 병원문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오늘

혼자 어떻게 와이프 똥 갖고 가느냐.

회사에선 어디에 두느냐. 등등 걱정이 많으셔서

우리는 조금씩 회사 늦기로 하고 

아침에 성모병원까지 가기로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 바람에 출근길

빗속에서 신나게 데이트다. 


1983년 3월 3일 목요일     


엄마가 주황색에 땡땡이 무늬로 

미스 배 양장점에 데리고 가 

임신복을 맞춰주셨다.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울 백프로이다. 

스탠드칼라로 했다.      


1983년 3월 5일 토요일     


목욕탕에서 얌체 아줌마. 

난 세 번이나 정성껏 밀어주었는데 

우쒸~비누칠만 해주고 말다니. 

더 빡빡 밀어주세욧! 할 걸 그랬나?      


1983년 3월 8일 목요일     


아줌마가 팥죽을 한 솥 끓여주셨다. 

난 그것을 저녁으로 오자마자 4그릇을 

맛있는 봄김치랑 실컷 먹었다.      

다시 또 새벽 3시에 일어나 4그릇을 해치우고

아침밥으로 한 대접을 다시 먹고

결국 팥죽 한 솥을 혼자서 다 해치웠다. 

세상에......     

밤에 2시에 한번, 

4시에 한번, 또 6시에......


너무나 자주 화장실을 간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야 하는 통에 

정말 미치겠다.      

정말 나의 뱃속에 우리 그이와 나의

아기가 숨 쉬고 있는 것인가?

엄마가 된단다. 내가. 

실감이 안 난다. 

예쁘게 키워야지.      


1983년 3월 18일 금요일     


일주일의 긴장이 풀려서인가.

그냥 마구 짜증이 나고 또 우울하기도 하고

그렇고 그렇다. 대학동창들 만나 술 마신 단다. 

늦게 들어온단다.       

불란서에서 배웠다는 남자 미용사에게서

머리를 쌍둥 잘라버렸다.      


1983년 4월 4일 월요일     


인수봉에서 대학생들 20여 명이 조난.

7명이 사망했다. 

모두 성균관대 학생들.

괜히 내 마음이 슬프고 아프다.      


1983년 4월 8일 금요일     


난 왜 이리 많고 많은 책들이 

읽고 싶어 지는 걸까.      

안경이는 다짜고짜 말했다.    

  

"책? 웃기지 마.  아기 한번 낳아봐."     

"회사 계속 다니겠다고?  

이원영 교수의 '젊은 엄마를 위하여' 란 책을 

당장 사서 봐봐!"  

   

언제나 자기 삶에 자신만만한 안경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주 잘 살고 있다. 

그것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나는?    

   

그래, 난 나의 이 생활, 

결혼생활에 지극히 만족한다.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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