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이야기 #14
주문제작의 장점은 자신이 선호하는 제작자가 연주자 성향에 맞춰 직접 악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연주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새악기를 길들여야 하는 것과 유명 제작자의 경우 비싼 가격과 상당히 긴 대기 및 제작 기간이다.
먼저 제작을 의뢰할 제작자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미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것이 필수다. 국내 제작자라면 직접 찾아가 제조과정을 옅보고 상담을 하면 된다. 해외 제작자의 경우 직접 찾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물리적 거리로 힘들다면 메일로 통하거나 해외 제작자를 잘 아는 국내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다. ‘바친기’ 카페의 몇몇 회원이나 국내 유명 제작자를 통하면 해외 제작자를 접할 수 있다.
국내 제작자부터 언급을 해보자. 오늘날에도 제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히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러운 감이 있다. 국내 제작자는 크게 세 단계로 분류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악기 제작을 배워 공방을 차린 제작자, 이탈리아 크레모나나 굽비오 등 해외에서 현지 제작자의 도제 생활을 거쳐 제작기술을 배운 뒤 국내에서 제작 활동을 하는 사람, 그리고 해외에서도 공부를 했는데다가 이탈리아 트리날레, 미국 VSA 등 주요 악기 제작 대회에서 수상까지 받은 제작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외 제작 경험이 있고 수상까지 받으면 악기 가격이 비싸진다.
한국인 중 해외에서 제작을 배웠고 수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제작자는 생존해 있는 사람으로 이주호, 임동필, 박지환, 이승진, 오동현, 전민준 등이 있다. 각자의 악기 제작 성향이 있기 때문에 구매자가 선호하는 제작자를 고르는 것이 좋다. 가격대는 2000만원 전후다.
해외에서 제작을 배웠지만 수상은 받지 못한 제작자도 나쁘지 않다. 수상이라는 게 악기 소리 평가도 있지만 악기의 미관 평가도 크기 때문에 의외로 소리의 차이는 덜 할 수 있다. 이같은 제작자들은 앞서 언급한 악기 위탁매매상인 ‘에프홀’에 간단한 이력과 수상 경력 등이 잘 정리돼 있어 참고하면 좋다.
이밖에 국내에서 제작기술을 배운 사람들의 제작 악기는 300만~500만원 선이다. 조세현, 문병식, 이종대, 김대석 등을 포함해 수없이 많다. 이 분들에 대한 정보는 제각각이면서 잘 정리된 자료는 없지만 반대로 시중에 나온 악기는 많기 때문에 미리 접해서 악기를 시연할 수 있다.
해외 제작자는 Gregg Alf, Joseph Curtin, Marcus Klimke 등 제작자들이 꼽힌다. 이들 가격은 정확하지 않지만 상당히 고가다. 최소 4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가까이 나가기도 한다. 의외로 이탈리아 크레모나 제작자에게 주문 의뢰하는 것이 저렴할 수 있다. Morassi Family나 Stefano Conia 등 유명제작자가 아니라면 10000~15000유로(1300만~1900만원)에서 주문이 가능하다. 크레모나 제작 스쿨을 막 졸업한 젊은 제작자라면 10000유로 이하도 가능하다. 일부 이탈리아 제작자 중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에 납품하는 악기 주문이 밀려 있어 개인의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라서 차별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 상 거절이니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여담으로 일본과 중국, 국내 연주자 중 크레모나 제작악기라면 무조건 훌륭하고 명장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사견이지만 크레모나 제작 스쿨이 세계적이기 때문에 제작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많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대중 교육과정이나 제작 악기 수로는 최상위라고 볼 수 있지만, 최고의 악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가령 크레모나를 찬양하는 연주자들에게 20세기 크레모나 제작자 중 ‘명장’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을 물어보면 몇 명이나 대답할지 의문이다. 아마 Morassi, Bissolotti, Conia 정도를 언급할까? 하지만 이 분들도 유명한 제작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최고의 제작자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당장 크레모나는 같은 나라인 이탈리아 볼로냐 스쿨에 비해서도 실력이 밀리는 실정이다. 지금은 고인이지만 20세 제작자인 Ansaldo Poggi 만해도 동시대의 크레모나 제작자의 악기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악기 가격도 두 배 가까이 높다), Poggi의 제자이자 현존해있는 Guicciardi만 해도 오늘날 크레모나 제작자를 월등이 능가한다는 평이 많다.
게다가 크레모나 제작자는 지그문토비치를 필두로 알프, 그라이너 등 최고 수준의 미국 제작자와 비교해도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점을 미뤄보면 크레모나 악기는 다양하고 어느정도 이상의 수준을 갖췄으나 항상 ‘명기’(名器)일 것이라는 공식에서는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크레모나에서 제작을 배운 국내 제작자들 역시 현존 크레모나 제작자보다 더 나을 수 있다. 크레모나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 한 제작자는 “이탈리아에서 제작을 배우는 학생 중 제일 잘 만들었던 학생도, 제일 못 만들었던 학생도 한국인인 경우가 많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같은 의미로 이탈리아에서 제작기술을 배운 불가리아, 체코 등 동유럽 제작자를 선택한다면 8000유로 이하로 수준 높은 악기를 구할 수 있다. 최근에 알게 된 불가리아 제작자인 Stoyko Chobanov가 만든 악기를 봤는데 기대 이상의 소리를 느꼈다. 가격은 일본 소매상 기준 95만엔(1000만원)인데 상대적으로 악기 가격이 높은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작가는 800만원 이하로 추정된다. 동유럽 제작자들은 품질 좋은 단풍나무(메이플) 산지인 발칸 반도와 가까워 더 나은 목재를 쓸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서유럽 등에 비해 낮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제작을 배워도 현지에서 공방을 차리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악기값을 매기는 편이다.
우여곡절 끝에 악기를 주문했다면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수 년간 기다리면 악기를 받을 수 있다. 보통 제작기간은 2~4달이지만, 유명 제작자는 주문이 밀려있는 경우가 많아 수 년간 대기해야 한다. 배송과 세금문제도 경매와 같이 국내 제작자라면 별도의 세금이나 배송비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해외 제작자라면 배송비, 수입 부가세, 상황에 따라서 관세를 추가로 지불해야한다.
제작자가 여는 악기 전시회 또는 박람회를 통해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 루트로 악기를 알아본다면 비교적 다양한 악기를 손 쉽게 접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까운 나라인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악기 박람회는 전 세계 제작자들이 출품하기에 규모면에서 상당히 크다. 당장 유명하진 않지만, 좋은 악기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상해 박람회만큼은 아니지만 소규모로 전시회 등이 열리는 편이다. 주로 ‘송우’ 무역에서 매년 주최하는 악기박람회가 있다. 송우 전시회는 주로 다양한 이탈리아 악기를 가져와 선보인다. 과거 젊은 크레모나 제작자 컨셉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올드 악기를 출품하기도 한다. 젊은 유럽 제작자 입장에선 동아시아 시장 판로를 뚫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런 전시회는 꾸준히 열리는 편이다.
이밖에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들을 가지고 여는 전시회가 있다. 한 제작자의 여러 악기를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