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말고 당장 당 조심
24주에서 28주 사이에는 임신성 당뇨(이하 임당) 검사를 받게 된다. 태반에서 인슐린 분비를 방해하는 호르몬이 나오는 까닭에 이전까지 병력이 없었어도 임산부가 되면 일시적으로 당뇨가 생길 수 있다. 제때 혈당을 관리하지 않으면 태아에게 황달이나 저혈당이 올 확률이 높아지고, 심할 경우 사산하기도 한단다.
22주 검진 때 바나나와 고구마를 신나게 먹고 바로 병원으로 갔더니 소변 검사에서 당이 나왔다. 24주 검진일에는 임당 검사를 하자며 작은 약병을 하나 주셨다. 어이쿠. 이제부터 1일 1 샐러드다. 빵이랑 과자와는 이제 연을 끊겠다(고 다짐했으나 몰래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두 주 후, 마침내 검사 당일. 12시 20분에 물약을 마시라고 했었지. 인터넷에서 임당 검사 후기를 검색해 보니 8시간 금식하고 검사받으라는 병원도 있다던데,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약 먹기 전까지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양심상 점심은 참고, 아침 식사만 하자. 커다란 귤 하나, 무화과 캄파뉴 한 조각, 두유 반 잔.
오후 12시 20분, 냉장 보관 중인 약병을 꺼냈다. ‘당뇨병 진단용 의약품’이라 적혀 있는 물약이다. 성분표를 봤더니, 100ml 중 포도당이 절반, 나머지가 보존제와 물, 레몬라임향, 시트르산 수화물(체내 에너지인 ATP 합성 과정을 촉진하는 성분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이걸 마시고 한 시간 후에 피를 뽑아 검사하고, 한 시간 후에 결과가 나오면 진료를 받는다.
뚜껑을 열었다. 킁킁거려 보니 단내가 났다. 한 모금 들이켰다. 으엑. 사이다로 젤리를 만들어 억지로 다시 녹인 맛이잖아. 고로쇠 수액에 설탕을 엄청나게 들이부은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달아서 느글거리는데, 심지어 끈적끈적해.
한 모금에 한 마디씩 큰 소리로 불평해 가며 끝까지 마시고 병원으로 갔다. 채혈실에서 일단 번호표를 뽑았으나 난감했다. 나는 번호 순서 말고 약 먹은 시간에 맞춰 채혈해야 하는데. 전광판에 내 번호가 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는 1시 20분에 피를 뽑으라고 하셨어요!”
채혈실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고 나니 민망했으나 어쩔 수 없지. 정확히 그 시간에 내 번호를 다시 호출해 주셨다. 의자에 앉아 소매를 걷고 쿠션 위에 주먹 쥔 왼팔을 얹었다. 피를 뽑는 동안 괜히 다른 곳을 쳐다봤다. 5분간 지혈하라 하셔서 팔뚝 위 알코올 솜을 정확히 5분 동안 꾹 눌렀다.
산부인과 대기실 한쪽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진료 시간을 기다렸다. 손에 집히는 대로 갖고 온 책이 하필 음식 이야기다. 조선 사람은 밥, 국, 찬을 갖추어 식사했다는 부분을 읽었다. 아아, 현명하셨던 조상님, 저는 오늘 그러지 못했어요.
진료실에 들어가서 임당 검사 통과 판정을 받았다. 검사 결과 수치가 140 이하이면 되는데, 115가 나왔다고 한다. 머리로는 ‘앗싸!’라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점잖게 사회적 발언을 했다.
“네, 감사합니다.”
휴우. 재검받는 경우가 많다던데, 바로 통과했네. 병원을 나오니, 갑자기 못 먹은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덮쳤다. 근처 편의점을 찾아 옥수수 스팀 케이크를 샀다. 봉지를 여는 순간, 터져 나오는 맛있는 냄새. 이거지! 인슐린, 당분간 또 당당하게 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