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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Jul 21. 2017

prologue: 여자, 달과 궁

달은 차고 기울며 다가왔다 멀어집니다


      늘 아침에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서쪽에서 지는 해와는 달리 달은 뜨는 시간도, 떠오를 때의 모양도 늘 다릅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모양 탓에 '영원하지 않음'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달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도 차마 사랑의 맹세를 걸기 힘든 불안정한 대상이었지요. 보름달이 뜬 밤에는 늑대인간이 깨어납니다. 달이 가까워오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고 해서 달(luna)에 어원을 둔 '루나틱(lunatic, 미치광이)'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지요. 달은 우리 삶에 은밀하지만 위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태양이 1백억 년의 수명을 다해 암흑 속에 스러져가도 달은 생명이 사라진 태양계의 어둠 저편에서 여전히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을 겁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달마다 한 번씩 겪어야 하는 일, 남자들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여자의 몸은 '한 달'을 주기로 바뀌지요


      달이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생체리듬도 대략 한 달을 주기로 달라집니다. 늘 같은 몸인데도 어느 날에는 붓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식욕이 돌고, 또 어느 날에는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옵니다. 어느 날에는 살이 찌고 어느 날에는 체중이 줄어듭니다. 어느 날에는 기분이 몹시 우울하고 어느 날에는 이유 없이 찌뿌드드하죠. 난소에서는 한 달에 한번 난자가 성숙되고자 궁의 내막은 다달이 부풀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 허물어져 배출되거나 임신을 일으키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여자의 몸을 조절하는 여성호르몬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분비되어 여자의 몸에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출산은 체력으로 보나 근력으로 보나 여러모로 남자에게 더 유리한 일인데 말이죠.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곳은 자궁입니다


      자궁은 여자에게만 있습니다. 남녀의 생식기관이 기능적으로 대부분 상동 관계를 이루는 것과는 달리 자궁은 질과 함께 여자에게만 발달된 기관입니다. 당연 한말이지만 여자가 임신이 가능한 것은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소가 여성호르몬을 분비하고 뇌에서 분비의 적절함을 조절하지만 그 영향으로 인해 여자의 몸에 ‘이벤트’가 일어나는 현장은 자궁입니다. 자궁은 여자의 장기 중 일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지요. 과거에는 여자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자궁이 주도한다고 믿기도 했었어요.

남자가 임신을 대신하는 유쾌한 상상은 미래에도 상상 속에서만 그칠까요? 


임신과 출산,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여자의 초경과 폐경 사이, 40여 년의 시간 동안 임신이라는 이벤트는 없을 수도 있고 있더라도 단 몇 번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그저 다달이 호르몬이 밀려왔다 사라질 뿐이지요. 임신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 모두가 그 일을 겪어낼 것이고, 호르몬의 파도가 없어진 이후에도 여자는 여전히 여자입니다. 여성의 건강을 두고 '임신'과 '출산'말고도 해야 할 얘기는 많다는 뜻입니다. 가임기 여자를 ‘임신이 가능한 자궁’으로 간주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부 기관의 저출산 정책도 시대착오적이지만, 저출산 그 자체가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요즘 여자의 건강 그 자체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위) 2016년에 전국 가임기 여성을 경악과 공분으로 몰아넣었던 출산 지도. 우리는 걸어다니는 자궁이 아니랍니다. (아래) 저출산 대책이라고 내놓은 '하향결혼' 주장.



임신하지 않는 여자와 출산하지 않는 자궁

      결혼은 줄고 출산은 더욱더 줄어든 시대, 수동적 미혼이 아니라 자발적 비혼이 늘어나는 시대.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가임기 절반 이상을 임신이라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보내는 이들이 태반인 시대입니다. 평생을 임신하지 않기로 한 여성의 건강은 어떤 키워드로 접근해야 할까요? 사회생활에서 생긴 피로가 여성의 호르몬 변화와 맞물렸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요? 임신으로 인한 생리의 중단, 모유수유로 인한 유방의 변화를 겪지 않은 채 호르몬의 지속적인 자극에 노출된 여성의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임신과 출산의 경험 없이 폐경을 맞이할 자궁의 건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반도의 마흔 직장인 여자가 겪는 흔한 건강검진.jpg


'엄마가 될 몸'이라는 말은 잠시 미뤄두세요


      여자가 몸을 아껴야 되는 이유는 '엄마가 될 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내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몸이 갖고 있는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임신과 출산일뿐이에요. 엄마로서, 임신이 가능한 자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다달이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 몸이라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를 낳아도, 낳지 않아도, 혹은 더 이상 낳지 않을 계획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자의 건강을 살피는 일은 그저 달의 흐름을 따라서 변하는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지요. 그럼으로써 몸과 마음의 불편을 덜고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을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으면 됩니다.


      이제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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