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그곳, 그 한 모금을 꿈꾸며 사람들에게 주문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수영도 그러했다. 언젠가는 이루어 보리라 다짐하게 했던 순간들.
제일 먼저 엄마의 반대부터 떠오른다. 흐릿한 기억이긴 하지만 국민학생 시절 친구들이 수영장에 같이 가자 했었다. 엄마는 수영장 물에 락스를 탄다는 정보를 듣고 나를 절대 그곳에 보내지 않았다. 얼마나 상심했는지, 간절히 가고 싶었는지 같은 것들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영장이란 곳은 감히 가볼 수 없는 머나먼 세상으로 시작됐다.
성인이 된 뒤로 20대 후반에 동남아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수영은 못했지만 푸껫 비치에 가져갈 수영복을 고심해서 준비했다. 수심이 얕은 바닷가에서는 그런대로 놀았지만,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같이 간 회사동료 언니는 자기 키보다 깊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선베드에 누워 책을 보다가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어가는 서양 남자까지 그 여유로운 풍경에서 나는 제외되는 기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무릎 높이쯤 되는 어린이 풀에서 잠깐씩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봤다. 같은 돈 내고 좋은 곳에 여행을 와도 수영을 할 수 있느냐없느냐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것이 달라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수영 강습을 시작했다. 그때 나의 로망은 야외 수영장에서 햇살을 받으며 제대로 수영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되어 흐지부지됐다. 물을 잘 못 삼켜 숨을 못 쉬겠는 아찔한 순간을 겪고 나서, 수영장이 무서워졌다. 어쩌면 그냥 가기 싫어진 상태에서 정당한 이유가 됐을 수도.
마흔 살에 오래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집에서 걸으면 3분도 안 되는 곳에 수영 센터가 있었다(사실 집을 고를 때부터 그 부분이 꽤 매력적이었다). 퇴사를 기념하며 비싼 수영복을 샀다. 몰두해야 할 것이 필요했고 한동안 물 공포증은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강습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강원도 원주로 이사를 왔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한가한 시간에 운전을 다시 배웠다. 차로 먼 거리에 있는 체육센터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숙제이자 빛바랜 로망으로 남은 수영.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처음 한 달은 출석보다 결석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현재 4일 강습, 자유수영 2~3일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가고 있다. 거저 된 것은 아니다. 여러 계기들과 몸에 착 붙어버린 습관덕분이다. 간혹 가기 싫어지는 마음이 들더라도 몸이 먼저 수영 가방을 챙기고 있다. 아직 해외는 아니지만 국내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내 마음대로 신나게 수영도 해봤다.
로망은 물 밖에서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로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속이 물 바깥보다 편하게 느껴질 만큼 매일의 시간이 쌓여야 내 것이 된다. 로망에서 일상이 된다.
올여름, 남편과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드디어 마실 예정이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수영장으로 실컷 달려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