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칼한 갈치조림 < Life 레시피 >
오랜만에 마트에 갔더니 은색의 갈치가 나를 반겼다.
마치 간절하게 “나를 사 가세요!”라고 외치는 듯해서 “반갑다! 갈치야!”하며 얼른 집어 들었다.
갈치가 그렇게 실해 보이지는 않아도 은빛이 반짝반짝한 것이 꽤나 싱싱해 보였다.
지나가다 고구마순도 발견했다.
‘아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고맙게도 껍질을 벗긴 고구마순이었다.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이유로 고구마순을 멀리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워낙 좋아하는 터라 손톱이 시커멓지도록 고구마순 껍질을 까고 까고 했는데 ㅋ.
그런데 껍질 벗긴 고구마순이라니 안 살 이유가 전혀 없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맘때가 고구마순을 따야 하는 시기였나 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심어 밭에서 고구마순을 따다가 생선조림을 해 먹었는데… 1년도 채 안 됐는데 그걸 벌써 새까맣게 까먹다니 ㅠㅠㅠ…
솔직히 농사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요 몇 년 해보고는 알았다. 농부들이 보면 그것도 농사라고 하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땡볕에서 땅을 갈아야 하고, 고구마 모종을 사다가 모종을 심어야 하고, 무엇보다 고구마를 캐는 일은 정말 힘들다. 물론 땅속에서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를 볼 때는 어떤 희열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 손으로 직접 수확한 고구마를 지인들과 나눠먹고 쪄먹고 하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나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올해는 바쁜 남편 덕분에 고구마를 심지 않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고새 고구마의 ‘고’ 자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마트에서 깐 고구마순을 보는 순간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갈치조림>이 소환된 것이다.
장바구니 속 갈치와 고구마순을 생각하니 벌써 입가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남편의 고향은 저 아래 남쪽이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잡은 붕어와 함께 고구마순을 넣고 졸인 <붕어찜>를 먹고 자란 남편은 가끔 그때 그 맛을 잊지 않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붕어찜>을 하기엔 벅차고, 대신에 고구마순을 잔뜩 넣은 <갈치조림>이나 <삼치 조림>으로 대신하곤 한다.
시댁 큰 형님에게 배운 대로 고구마순을 잔뜩 넣고 졸인 <생선 조림>은 이맘때 우리 집 식탁에 으레 껏 올라가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비록 농사는 안 짓지만, 마트에서 껍질 깐 고구마순을 장바구니에 담았으니 집으로 돌아가 맛있게 요리만 하면 된다 ㅎ.
시댁에서 배운 <갈치조림>을 소개합니다!
<갈치조림>에 들어가는 재료들,
갈치 한 마리(소금 간 하지 않은 것), 고구마순 500g, 감자 큰 것 2개, 양파 1개(작은 것), 양념장, 육수(멸치, 다시마), 대파 어슷 썬 것, 청양고추, 건고추(데코 용), 대파 뿌리(대파 뿌리가 감기에 좋다고 해서 같이 넣고 푹푹 끓임. 꽤 알뜰한 듯 ㅋ)
양념장 만들기
다른 재료들을 손질하기 전에 양념장을 미리 만들어 숙성시켜 놓으면 양념이 잘 어우러져 조림의 맛을 한층 더 높인다.
양념장에 들어가는 재료들,
마늘 빻은 것 밥숟가락 2, 생강 빻은 것 밥숟가락 1/2, 진간장 밥숟가락 10, 표고버섯 가루 밥숟가락 1/3, 후춧가루 찻숟가락 1/2, 조청 밥숟가락 1, 고춧가루 밥숟가락 3, 고추장 밥숟가락 1/2
1. 위의 재료들을 다 넣고 골고루 섞이도록 잘 젓는다.
2. 1이 잘 숙성될 수 있도록 냉장고에 30분 이상 숙성시킨다.
얼큰하고 칼칼한 <갈치조림> 본격적으로 시작!
* 이번 <갈치조림>은 고구마순을 잔뜩 넣고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갈치조림>에 감자가 빠져서야 왠지 서운한 감이 든다. 그래서 고구마순 못지않게 감자도 듬뿍!
1. 껍질 벗긴 고구마순을 끓는 물에 약 10분 정도 데쳐낸다.
2. 껍질 벗긴 감자를 약 1.5 cm 크기로 타원형으로 크게 자른다.
3. 2에 물을 붓고 감자가 반 정도 익을 때까지 익힌다.
4. 3 위에 데친 고구마순을 올린다.
5. 4 위에 토막 낸 갈치를 올린다.
6. 5 위에 양념장을 뿌리듯 올린다.
7. 6에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멸치, 다시마)를 재료가 찰랑찰랑 잠길 정도로 붓는다.
8. 7 위에 굵게 썬 양파를 올린다.
9. 8을 강한 불에서 끓이다 펄펄 끓으면 약불로 줄여 뭉근하게 졸인다.
10. 9의 육수가 어느 정도 졸면 그 위에 어슷 썬 대파를 올리고 대파가 숨이 죽을 때까지 잠깐 끓인다.
11. <갈치조림>이 대체적으로 빨가니 가능하면 음식이 돋보일 수 있도록 그릇을 잘 선택하는 것도 요리의 꿀팁!